응창기배 오송생의 불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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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바둑의「공제」를 흔히「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필자는「덤」이라는 용어가 개념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공제」쪽을 사용하는 편이다.「덤」은 물건을 사고 팔 때 파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덜 줄 수도, 더 줄 수도 있지만 바둑의 공제는 정해진 대로 꼭 그만큼 지불해야 하는 강제조항이고 보면「덤」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걸맞지 않다.
용어는 그렇다 치고 바둑의 공제는 몇 집이 가장 합리적일까. 과거에는「4집반」이었다가 현재는 주로 「5집반」을 적용하고 있다. 아직도 흑의 승률이 높다는 통계를 이유로 들어 일부에서는「6집반」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하기도 하고 또 최근에는 서양의 아마추어기사들이「6집반」이 가장 합당하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서를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전세계 바둑계를 사실상 대표하는 한국기원· 일본기원· 중국바둑협회는 전혀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응창기배의「8집 공제」는 대단히 파격적이다.
모든 참가자에게 동등한 조건인 이상 세계최대기전 개최자의 뜻을 존중하자는 취지로 수용 실시되고 있지만「8집 공제」는 아무리 잘봐 주어도 1집 가량 과하다는 것이 대다수 프로기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리와 친숙한 우쑹성(오송생) 9단이야말로「8집공제」의 최대 피해자다. 제1기 때는 조치훈9단에게 흑으로 1집을 졌고, 제2기 때는 요다 노리모토 (의전기기) 8단에게 역시 흑으로 1집을 져 잉창치(응창기) 씨가 안타까운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렇게 불운한 친구가 있나. 두 번씩이나 집흑1집 패라니….오송생이야 말로「8집공제」를 반대할만 하다』고 탄식하기도.
다른 기전처럼「5집반 공제」였다면 두판 모두 1집 반승이었을 터이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일본바둑계에서 구세대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요다8단과의 일전은 오9단이 영원히 잊기 어려운 억울한 역전패였다.
그동안 한국에서 갈고 닦은 화려한 세력작전(일명 대륙류)으로 줄곧 압도해 나갔으나 종반의 중요한 고비에서 실착을 범해 20집 가량 손실을 본데다가 끝내기에서도 어이없는 착각으로 또다시 손해를 자초한 끝에 1집을 패한 내용이니 꼭「8집 공제」때문에 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편「제2기 응씨배」의 4강에 진츨, 일약 스타덤에 오른 여성강자 루이네웨이(예내위) 9단이나 일본의 신예강자 고마쓰(소송영수) 8단 같은 사람은 자신이 선택권을 얻었을 경우 흑을 원하고 있어 이채. 이는「8집 공제」라고 해서 모든 고수들이 백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하나의 뚜렷한 증거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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