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영화는 죽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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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영화 '밀양'의 주연배우 전도연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사랑에 막 눈뜬 천진한 시골 소녀에서 불륜에 빠진 유부녀, 에이즈 환자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연기의 폭을 넓혀 가던 전도연이 드디어 세계 정상에 올랐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베니스 영화제의 강수연 이후 20년 만이다. 한국 영화와 영화인의 저력을 새삼 실감하며 월드스타 탄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한편으로, 10년간 지속되던 '충무로 르네상스'가 어느 결엔가 식어버린 한국 영화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칸 영화제의 필름마켓에서 한국영화 부스는 예년과 달리 임대료도 뽑기 힘들 정도로 파리를 날렸다. 지난해 개봉된 한국영화 중 이익을 낸 작품은 열 편 중 두 편꼴이었다. 해외수출은 재작년에 비해 68% 줄었고, 특히 한류 열풍이 가라앉은 일본지역 수출은 82%나 급감했다. 올 들어 개봉한 한국영화 40여 편 중 관객 200만 명을 넘긴 것은 단 세 편이다. 무엇 때문에 전도연의 쾌거와 침체된 충무로라는 대조적인 풍경이 연출되었는가.

흔히 거품이 잔뜩 낀 고비용 제작 관행, 몇몇 흥행작이 극장 스크린을 독점하는 폐단, 위축된 부가(附加) 판권 시장 등이 한국 영화의 침체 요인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역시 기획력.창조력 부족 탓이 가장 크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미국 드라마)'의 탄탄한 스토리를 떠올려 보라. 그동안 영화계는 충무로 불패 신화에 도취해 안이한 기획과 주먹구구 투자를 일삼아 오지 않았는가.

'밀양'에서 전도연의 상대역으로 열연한 송강호는 이번 수상이 "한국영화가 죽지 않았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공감한다. 전 세계가 인정한 연기.연출력을 이제부터 기획력이 떠받쳐 주어야 한다. 아이디어와 스토리에 투자해야 한다. 더 이상 스크린쿼터 축소 타령이나 할 때가 아니다. 전도연의 쾌거가 한국영화의 또 다른 전성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