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 침해에 강력 대처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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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의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 국민의 알 권리나 권력에 대한 언론의 견제 기능을 침해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참여정부에 있다. "

일선 취재기자들이 처음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재경경제부 출입기자들은 28일 성명서를 통해 "언론 취재의 선진화에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문제는 알맹이 없는 선진화 방안을 내세워 기자들을 취재 현장에서 내몰고 취재원과의 접촉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재경부 등록기자단 180여 명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날 성명서에서 기자들은 "정부가 새로운 취재환경을 언론에 강요하기에 앞서 스스로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깨닫기 바란다"면서 "언론도 낡은 취재 관행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즉각 떨치고 선진 언론 창달에 앞장설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4일 산업자원부 기자들도 모임을 갖고 대처 방안을 논의키로 했으며, 공정위.농림부.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 출입기자들도 조만간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윤창희 기자

◆ 재경부 기자실은=신문사.방송사 등 80여 개 언론사 180여 명의 기자가 등록돼 있다. 경제 정책.금융.부동산 등 경제 전반의 문제를 다룬다. 지금도 기자들이 공무원 사무실을 방문, 취재하려면 공보 담당자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성명서 전문>

정부는 22일 기자실과 브리핑실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과천.대전 등 3개 청사로 통합한다는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언론의 취재 관행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언론이 먼저 고칠 것이다. 현장을 취재하는 일선 기자들도 과거 문제가 됐던 낡은 관행에는 먼저 손사래칠 정도로 언론 환경은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방안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훼손되고 언론의 취재 환경이 후퇴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는 바다.

2003년 기자실을 없애고 통합 브리핑 제도를 도입한 뒤 정부의 행태를 보면 이번 방안에는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정부 부처의 브리핑은 일방통행 식으로 진행됐고 언론의 정보공개 요청 등에는 입맛에 맞게 취사 선택한 측면이 없지 않다.

취재원과의 접촉은 극도로 위축됐고 그만큼 밀실 행정과 여론을 무시한 독단적인 정책결정의 가능성은 커졌다. 참여정부는 언론중재나 소송 등 보도에 대한 사후 대책만 강화했지, 실상을 정확히 알리려는 노력은 충분히 했는지 되묻고 싶다.

우리는 언론 취재의 선진화에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알맹이 없는 선진화 방안을 내세워 기자들을 취재 현장에서 내몰고 취재원과의 접촉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브리핑실이나 기사 송고실의 통폐합은 문제의 핵심이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죽치고 앉아서 담합하는 기자'는 어디에도 없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적한 기자들의 정부 부처 '무단 출입'도 거의 사라졌다. 기자단이 부활했다는 등 언론 환경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정부는 정보공개법 개정을 추진하고 새로 전자브리핑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브리핑 제도도 내실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전자브리핑 제도가 취재원과의 다양한 접촉을 원천 봉쇄하려는 대체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우려감을 표명한다. 언론의 문제는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 독자와 시청자가 심판할 일이다. 우리는 정부가 밝힌 브리핑 제도의 내실화나 정보공개 등 항후 보완책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나 권력에 대한 언론의 견제 기능이 침해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참여정부에 있음을 밝혀둔다.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우리는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수호를 위해 강력 대처할 것을 천명한다.

정부가 새로운 취재 환경을 언론에 강요하기에 앞서 스스로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깨닫기를 바란다. 우리는 낡은 취재 관행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즉각 떨치고 선진 언론 창달에 앞장설 것을 거듭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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