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이통」정면돌파 작심/태풍의 눈에 접근하는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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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직접나서 무효화… 반대여론 업고 강공채비/대선전략차질도 감수 “차별화” 밀어붙일듯
정부의 제2이동통신(이통) 사업자선정은 우리 정치사상 초유인 대통령과 여당 대통령후보간의 정면대결사태를 가져왔다.
김영삼민자당대표는 21일 『대통령은 깨끗해야 한다』며 노태우대통령의 도덕성을 정식으로 문제삼고 나서 포문을 열었다. 이에 청와대측은 『야당 당수때처럼 행동한다』고 몹시 못마땅해하지만 김 대표는 이미 단단히 작심한 듯하다. 그의 말과 행동이 어디까지 미칠지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가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김영삼대표는 이미 이동통신문제를 계기로 노태우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미결인채 남겨둔 문제들을 청산하려는 것 같다. 김 대표는 차제에 「대통령과 나는 이런 점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 자신이 앞으로 어떤 노선을 취할 것인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그동안 『노 대통령과 연결된 탯줄을 잘라내야 한다』는 충고를 꾸준히 들어왔으나 일절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입을 열었다는 것은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신호다.
김 대표진영은 대충 두가지 방향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무효화를 선언하는 강공책을 앞세워 여론의 힘으로 대통령과 선경에 이동통신이권을 취소·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법이다. 그런 다음 여세를 몰아 노 대통령의 도덕성을 시비,지도자로서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자는 것이다.
김 대표는 청와대와 선경이 먼저 취소·포기하지 않으면 28일 총재취임을 전후해 대국민선언을 통해 『사업자결정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노 대통령은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뜻을 밝힐 계획이다.
경우에 따라선 수위가 한단계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내가 집권하면 백지화해 새로 결정하겠다』고 공약하는 것이다. 김 대표 참모진은 노 대통령과 여권에 미칠 충격파를 고려해 막판까지 고심하고 있지만 의외로 김 대표의 행동이 단호할 가능성이 높다.
한 핵심측근은 『김대중·정주영대표가 백지화를 요구하는데 김 대표로서도 다른 선택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측은 그동안 선경의 최종현회장이 자진해서 노 대통령에게 포기를 건의하도록 여러 경로를 통해 설득해왔으며 지금도 압력을 넣고 있다. 핵심참모는 『최고 통치권자인 노 대통령보다는 최 회장이 발을 빼기 쉬운 입장 아니냐』며 『그가 먼저 포기하면 국론수습을 위한 용단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계속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한번 실패한 적이 있어 전망이 불투명하다.
김 대표는 노 대통령에 대한 압박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발표가 있던 날 아침 서둘러 박태준최고위원을 만났고,그 전에는 김종필최고위원과 전략을 숙의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이상연안기부장,금진호·이원조·서동권씨와 김영구민자당사무총장 등을 대통령에게 보내 설득케 했으나 메신저들이 모두 노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앞에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물러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제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노 대통령의 「오도된 결정」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 이동통신문제를 노­김 관계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게 하려 한다.
김 대표측은 그동안 가급적 『노 대통령과 나란히 손잡고 선거를 치러낸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동통신은 이런 신념을 밑둥부터 흔들었다. 지금부터는 노 대통령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김 대표 주변을 감돌고 있다. 물론 구석구석에는 『노 대통령의 도움없이는 불리하니 다정하게 가야 하지 않느냐』는 우려론이 있지만 대세는 아니다.
측근들은 노 대통령과의 관계변화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그동안 「노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나친 노­김 차별화는 곤란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김 대표는 이번 일로 무척 화가 났으며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결의가 확고하다.』
김 대표는 우선 노 대통령에게 직접 그동안 네차례이상 이동통신사업자선정을 연기해달라고 건의했다가 거절된데 대해 분노에 가까운 실망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런 개인적 감정에다가 폭발적인 반대여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는 『절대로 선경에 줄 수 없다』는 각오와 함께 노 대통령의 도덕성을 단단히 문제삼겠다는 자세다.
이런 관점에서 김 대표는 이통문제가 오히려 잘 됐다고 판단하는 경향이다.
김 대표측은 그동안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시도에 청와대측과 골수 민정계 일부의 반발을 받아 일정한 벽을 느꼈다.
그러나 이통사업자가 노 대통령의 사돈기업으로 결정된데 대해 국민 거의 다수가 대통령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되어 노 대통령과의 관계재정립이 한결 편하게 됐다는 시각이다.
김 대표측은 청와대측 스스로가 도덕성문제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만들었고,따라서 사회중추세력이 임기 6개월여의 노 대통령 권위에 무게를 주지 않게 됐다고 보고 있다.
김 대표측은 국민신뢰와 힘을 스스로 잃게 된 정부측을 비판하고 그런 정부와는 다른 힘있는 정부 구상을 하겠다고 해야 국민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 대표가 21일 강릉에서 『나도 처자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국가를 더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현정권의 도덕성을 우회해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가족이기주의때문에 국가이익이 침해돼서도 안되고 더군다나 국론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같은 간접화법은 김 대표의 단호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따라서 김 대표는 이통문제를 계기로 범여권의 대선전략에 다소 불이익이 있다손 치더라도 국민상대의 정치노선을 확고하게 보여준다는 구상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향후의 결단이 한층 관심을 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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