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위기를기회로] 충남 공주 엔젤농장 안승환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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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사곡면 엔젤농장 대표 안승환씨 부부가 꽃잎을 따고 있다.[공주=김성태 프리랜서]

신선초.신립초 등 유기농 야채를 재배했지만 판로가 막혀 비닐하우스를 갈아 엎었다. 빚만 1억8000만원. 앞이 캄캄했다. 세상을 등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안승환(55)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바닥부터 살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국의 유명 음식점과 대형 유통매장 식품코너를 돌기 시작했다. 이때가 1996년.

"소비자들이 양과 질 못지않게 냄새와 시각적으로 훌륭한 상품을 고른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다가 화훼서적에서 먹는 꽃잎이 외국에서 보편화한 것을 발견했다.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문제는 어떻게 재배하는가였다. 당시 국내에는 먹는 꽃잎을 재배하는 농가가 없었다. 그는 인터넷과 각종 전문서적을 뒤졌다.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국화.양배추꽃 등을 심었다. 이렇게 국내에서 먹는 꽃잎 재배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3일 오후 2시 충남 공주시 사곡면 엔젤농장. 농장 대표 안씨는 30도를 웃도는 25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팬지.바이올렛.국화 등 형형색색의 먹는 꽃잎을 따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해 먹는 꽃잎으로만 올린 매출이 2억여원. 지금처럼 먹는 꽃잎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안씨의 공헌이 컸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빚은 늘어나고 아주 힘든 때였지만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주변에서 말렸습니다. 먹는 꽃잎이 장사가 되겠냐고요. 저는 남이 거들떠보지 않는 아이템이라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먹는 꽃잎 재배의 핵심은 농약과 화학비료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먹는 꽃잎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쳤다면 소비자는 당연히 외면한다.

그는 갈매기의 마른 분뇨를 톱밥에 섞어 거름으로 쓰는 유기농법을 개발했다. 여기에 꽃잎에 진딧물이 생기지 않도록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를 풀었다. 성공이었다. 씨앗을 저온 처리해서 일반 꽃잎과 색깔.모양 등을 다양하게 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그가 이렇게 해서 농장에서 재배한 꽃잎은 300여 가지나 된다. 특히 쌈 싸먹는데 인기가 높은 양배추꽃을 '로즈'라는 상표로 출시했다. 관절염에 좋다는 판시판시탄, 소염작용에 좋다는 병풀 등도 재배에 성공했다.

문제는 판로였다. 역시 바닥부터 다졌다. 직접 전국의 주요 아파트단지를 돌며 먹는 꽃잎을 소개하는 전단지를 돌렸다. 꽃잎을 이용한 음식 시연회를 여는 등 홍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꽃잎을 이용한 비빔밥.쌈밥.화전.꽃감자 샐러드 등 음식도 개발했다.

그러자 전국의 쌈밥 집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서울 가락동 도매시장과 대형 유통매장 등에도 꽃잎을 공급하게 됐다. 가격은 도시락 크기만 한 포장용기에 10여 종의 꽃잎을 넣어 개당 만원이다. 매출이 매년 꾸준히 늘어 빚을 다 갚았고, 올 하반기부터는 일본 등에 수출도 할 계획이다.

안씨는 "농업도 정보기술(IT) 산업과 마찬가지로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며 "남이 도전하지 않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공주=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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