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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기차타고세계여행] 북유럽 플롬 산악 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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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m의 플롬 역을 출발한 기차가 1시간 동안의 운행을 마치고 해발 866m의 뮈르달 역에 도착해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달리던 기차가 거대한 산을 만났다. 관통할까? 피해갈까? 다 틀렸다. 기차는 대신 보듬어 안는 길을 택했다. 뱀이 바위를 타고 넘듯 지그재그로 산허리를 돌아 오른다. 평균 경사각 44도. 아슬아슬 곡예는 정상까지 계속된다. 평지 대신 산을 달리는 기차, '기차 타고 세계여행' 두 번째는 바로 노르웨이의 플롬 산악기차다. 출발 전 주의사항 한 가지. 평소 놀이기구 타는 걸 꺼렸던 사람이라면 미리 멀미약을 먹어 두는 편이 좋다.

<플롬(노르웨이)> 글.사진=김성룡 기자

바이킹을 상징하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기차에 오른 노르웨이 관광객들. 이들은 바이킹의 후예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아울랜드 피오르 안쪽에 수줍게 자리한 플롬. 인구 450명의 자그마한 바닷가 마을이다. 세계적 관광지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기차는 해발 2m인 이곳 플롬 역을 출발해 해발 866m의 뮈르달 역까지 오른다. 깎아 지른 협곡으로만 20km, 대략 1시간쯤 걸린다.

문득 궁금해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도대체 플롬 산악열차는 왜 산으로 갔을까? 아마도 그것은 대자연에 대한 노르웨이인들의 경외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끝없이 이어지는 깊은 협곡과 뾰족한 산 봉우리…. 이 지역 전체가 간빙기 빙하가 깎아 놓은 한 편의 '작품'이다.

이 웅장한 메시지를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온전히 전하는 방법, 기차 외에 또 있을까. 다른 교통 수단으로는 도무지 안될 성싶다. '덜컹'. 몸을 흔드는 진동이 상념을 깨운다. 드디어 출발이다.

1923년에 시작된 플롬 산악열차의 공사는 20여년 만인 1944년 끝났다. 산악 기차인 만큼 터널이 많은 게 특징. 숫자가 무려 20개, 총 연장 6km나 된다. 더 놀라운 건 이 중 18개를 오직 사람의 힘으로 뚫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사 초기엔 한 달에 1m 나가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터널을 지나다 보면 곳곳에 바윗돌을 깎아낸 거친 흔적이 날것 그대로 남아 있다. 터널이 아니라 꼭 땅굴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한쪽이 탁 트인 독특한 구조. 덕분에 산 쪽은 벽으로 꽉 막혀 있지만 맞은편 계곡 쪽으로는 시원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본격적인 산악구간은 해발 200m의 달스보튼 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객차 유리창 아래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짧은 거리를 직선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에 비해 훨씬 더 스릴이 넘친다. 쉴 새 없이 덜컹거리며 구불구불 계곡을 오르기 때문이다. 유리창 밖으로 한 발만 내딛으면 꼭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다. 긴장한 탓에 손에 송글송글 땀이 밸 정도. 하지만 관광객들은 잠시도 의자에 앉아 있지 않는다. 발아래엔 깊은 협곡, 머리 위엔 빛나는 눈부신 만년설. 모두가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한 컷이라도 놓칠세라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문득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인다. 벌써 종착역에 다다른 걸까? 아직 한 시간이 채 안 된 것 같은데…. 돌연 차창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다다닥 다다닥….' 비가 오나 싶어 창문 밖을 내다보니 거대한 물줄기가 용틀임 치고 있다. 해발 669m에 위치한 쿄스포젠 폭포. 높이 98m의 웅장한 폭포수 앞에 서니 관광객 모습이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처럼 한없이 작아 보인다.

기차는 이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창밖은 온통 흰 눈 세상. 신록으로 가득한 봄에 출발한 기차가 1시간 만에 겨울에 도착한 것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이동을 한 듯했다. 반소매 차림의 관광객들이 하얀 설원 위 뮈르달 역에 내려선다.

기차는 정상에 도착했지만 길은 끝나지 않는다. 동쪽은 북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오슬로, 서쪽은 피오르 여행의 출발점인 베르겐. 철길은 계속 이어진다. 어디로 갈 것인가. 선택은 여행자의 몫이다.

여행정보

■항공=한국과 노르웨이를 잇는 직항은 없다. 핀에어.스칸디나비아항공.네덜란드항공 등을 이용하면 유럽 주요 도시를 거쳐 오슬로나 베르겐으로 갈 수 있다.

■플롬 산악열차=플롬~뮈르달 왕복 요금이 290크로네, 편도는 190크로네(1크로네=약 160원)다. www.flaamsbana.no, www.visitflam.com.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기차.버스.페리.산악열차를 이용해 피오르와 만년설을 감상하는 패키지 상품. 오슬로~뮈르달~플롬~구드방겐~보스~베르겐으로 이어진다.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 모든 일정이 포함된 코스가 왕복 1896크로네, 편도 1165크로네다. 구간별로도 판매하며 티켓은 오슬로.베르겐의 여행안내소, 기차역, 여행사 등에서 살 수 있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버스와 페리 요금만 더 내면 된다. www.norwynutshell.com.

■노르웨이 피오르 관광정보=스칸디나비아 정부관광청(www.stb-asia.com, 02-777-5943)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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