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2m의 플롬 역을 출발한 기차가 1시간 동안의 운행을 마치고 해발 866m의 뮈르달 역에 도착해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달리던 기차가 거대한 산을 만났다. 관통할까? 피해갈까? 다 틀렸다. 기차는 대신 보듬어 안는 길을 택했다. 뱀이 바위를 타고 넘듯 지그재그로 산허리를 돌아 오른다. 평균 경사각 44도. 아슬아슬 곡예는 정상까지 계속된다. 평지 대신 산을 달리는 기차, '기차 타고 세계여행' 두 번째는 바로 노르웨이의 플롬 산악기차다. 출발 전 주의사항 한 가지. 평소 놀이기구 타는 걸 꺼렸던 사람이라면 미리 멀미약을 먹어 두는 편이 좋다.
<플롬(노르웨이)> 글.사진=김성룡 기자
바이킹을 상징하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기차에 오른 노르웨이 관광객들. 이들은 바이킹의 후예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도대체 플롬 산악열차는 왜 산으로 갔을까? 아마도 그것은 대자연에 대한 노르웨이인들의 경외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끝없이 이어지는 깊은 협곡과 뾰족한 산 봉우리…. 이 지역 전체가 간빙기 빙하가 깎아 놓은 한 편의 '작품'이다.
이 웅장한 메시지를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온전히 전하는 방법, 기차 외에 또 있을까. 다른 교통 수단으로는 도무지 안될 성싶다. '덜컹'. 몸을 흔드는 진동이 상념을 깨운다. 드디어 출발이다.
1923년에 시작된 플롬 산악열차의 공사는 20여년 만인 1944년 끝났다. 산악 기차인 만큼 터널이 많은 게 특징. 숫자가 무려 20개, 총 연장 6km나 된다. 더 놀라운 건 이 중 18개를 오직 사람의 힘으로 뚫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사 초기엔 한 달에 1m 나가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터널을 지나다 보면 곳곳에 바윗돌을 깎아낸 거친 흔적이 날것 그대로 남아 있다. 터널이 아니라 꼭 땅굴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한쪽이 탁 트인 독특한 구조. 덕분에 산 쪽은 벽으로 꽉 막혀 있지만 맞은편 계곡 쪽으로는 시원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본격적인 산악구간은 해발 200m의 달스보튼 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객차 유리창 아래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짧은 거리를 직선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에 비해 훨씬 더 스릴이 넘친다. 쉴 새 없이 덜컹거리며 구불구불 계곡을 오르기 때문이다. 유리창 밖으로 한 발만 내딛으면 꼭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다. 긴장한 탓에 손에 송글송글 땀이 밸 정도. 하지만 관광객들은 잠시도 의자에 앉아 있지 않는다. 발아래엔 깊은 협곡, 머리 위엔 빛나는 눈부신 만년설. 모두가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한 컷이라도 놓칠세라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기차는 이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창밖은 온통 흰 눈 세상. 신록으로 가득한 봄에 출발한 기차가 1시간 만에 겨울에 도착한 것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이동을 한 듯했다. 반소매 차림의 관광객들이 하얀 설원 위 뮈르달 역에 내려선다.
기차는 정상에 도착했지만 길은 끝나지 않는다. 동쪽은 북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오슬로, 서쪽은 피오르 여행의 출발점인 베르겐. 철길은 계속 이어진다. 어디로 갈 것인가. 선택은 여행자의 몫이다.
여행정보
■항공=한국과 노르웨이를 잇는 직항은 없다. 핀에어.스칸디나비아항공.네덜란드항공 등을 이용하면 유럽 주요 도시를 거쳐 오슬로나 베르겐으로 갈 수 있다.
■플롬 산악열차=플롬~뮈르달 왕복 요금이 290크로네, 편도는 190크로네(1크로네=약 160원)다. www.flaamsbana.no, www.visitflam.com.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기차.버스.페리.산악열차를 이용해 피오르와 만년설을 감상하는 패키지 상품. 오슬로~뮈르달~플롬~구드방겐~보스~베르겐으로 이어진다.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 모든 일정이 포함된 코스가 왕복 1896크로네, 편도 1165크로네다. 구간별로도 판매하며 티켓은 오슬로.베르겐의 여행안내소, 기차역, 여행사 등에서 살 수 있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버스와 페리 요금만 더 내면 된다. www.norwynutshell.com.
■노르웨이 피오르 관광정보=스칸디나비아 정부관광청(www.stb-asia.com, 02-777-5943)에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