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땅 동족대결 "금이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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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기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리고 주심이 북한 김일의 손을 번쩍 들어올렸을 때도 두 선수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승자의 얼굴에서도 기쁜 표정을 찾기 어려웠고 패자인 김종신(김종신)도 그리 억울한 낯빛은 아니었다.
두 선수를 모두 응원하던 관중석도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같은 핏줄을 나눈 동포끼리 이역만리 바르셀로나에서의 대결이 가슴아픈 때문이었을까.
김일로서는 그 얼마나 고대하던 금메달을 목에건 순간이었던가. 운동선수의 최고 소망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으니 흥분할만 한데도 22세의 청년 김일은 너무도 담담했다.
또 이날 경기장에는 남북이 모두 대부분의 경기를 끝낸 탓인지 체육계고위인사들이 모두나와 두선수의 경기를 관전했으나 누구도 목청을 높여 어느 한쪽만을 응원하지 않았다.
김일은 시상식후 인터뷰석상에서도 침착하게 『운동선수로서 이겼기 때문에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으나 같은 민족끼리 예선도 아닌 결승에서 겨뤄 이기니 마음이 무겁다』며 분단민족의 아픔의 일단을 내비쳤다. 한살위인 김종신도 『일이는 나보다 힘과 기술이 낫다』며 『우승을 축하한다』고 악수를 건넸다.
이에앞서 북한 이명성단장은 경기전 예상승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누가 이기든 관계없다』며 『둘다 다치지 않고 좋은 경기을 펼쳤으면 한다』고 애써 태연한 표정이었다.
관중석도 마찬가지. 북한의 김일이 먼저 엎굴리기에 이은 뒤잡기로 3점을 따내자 응원의 박수를 보냈고 이어 반격에 나선 김종신이 1점을 따라붙을 때도 『잘한다』며 똑같은 격려를 보냈다.
경기중 몸이 달은 쪽은 오로지 양쪽 코칭스태프뿐. 남쪽의 전해섭(전해섭) 감독이나, 북쪽의 이호준 감독이나 지도자의 마음은 제자가 승리하는 것뿐. 그러나 이들도 사석에서는 형-동생하는 사이. 경기후에는 서로 『잘했다』며 등을 두드리고 한동안 떨어질줄 몰랐다.
남북한은 레슬링경량급에 관한한 세계 최정상급. 때문에 각종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남북이 맞서 싸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날 남북한 경기를 지켜본 체육계인사들은 『더이상 남북이 맞서 싸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분단의 아픔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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