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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오일 뱅크, 아이디어 탱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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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지난해 말 입사한 현대오일뱅크 사무·영업직 신입사원 중 일부가 서울 동교동의 주유소에서 주유기 호스를 뽑아들고 활짝 웃고 있다. ‘비즈니스 매너’를 중시하는 현대오일뱅크에서 는 사무·영업 직원들이 늘 정장 차림으로 일한다. [사진=최승식 기자]


지난해 매출 9조1700억원에 당기순이익 685억원을 낸 대기업. 석유 수입 자유화로 석유 제품 내수 판매 경쟁이 격해지면서 2000년과 2001년엔 2000억~3000억원 적자(당기순손실)를 내는 위기를 딛고 일어선 업체. 창립 이후 주인도 몇 번 바뀌었고,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M&A)한 회사. 이 회사가 현대오일뱅크다. 가장 안정적이라는 정유업계에서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셈이다. 그 때문일까. 현대오일뱅크는 가장 정유사답지 않은 정유사로 알려져 있다.

◆정유사는 다 보수적?=컨설팅 회사에 다니다 2004년 1월 현대오일뱅크로 옮긴 김숙영(33.여) 인재개발팀 과장. 입사 1주일도 되기 전에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에티켓 강의를 하게 됐다. 아무나 지적해서는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라고 물은 뒤 적절치 않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게 아니다"고 타박을 놨다. 강의가 끝나고 누군가 귀띔했다. 어쩌면 임원만 쏙쏙 골라 질문을 하고 잘못됐다고 지적하느냐는 것이었다. 당시는 누가 임원인지 얼굴도 모르던 때. '아무리 강의였다지만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정유사에서, 그것도 밖에서 굴러들어온 어린 여성 직원이 임원들을 마구 지명해서는 훈계까지 했으니…'하는 생각에 뜨끔했다고. 그러나 추후에 돌아온 반응은 하나같이 "잘했다. 재미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김 과장은 "한화에너지를 인수하는 등의 과정에서 생긴 변화 수용력과 개방적인 마인드가 현대오일뱅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다.

정유사들은 대체로 남성 직원이 훨씬 많다. 현대오일뱅크도 사무직 여성 비율은 15% 정도로 다른 정유사와 비슷하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무엇보다 인재개발팀장이 여성이다. 김주희(41) 부장이 그 주인공. 인재 육성 전문 컨설팅사에서 일하다 2003년 4월 스카우트됐다. 서영태 사장이 면접을 직접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재를 키우려면 직원들 하나하나가 어떤 방향으로 자라기를 원하는지를 파악해 세심한 지원과 배려를 해야 한다. 그건 남성보다 여성이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나." 김 부장은 "남녀의 벽을 떠나 어떤 업무에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적임일지만을 따지는 게 현대오일뱅크"라고 말했다.

◆신입 사원이 보배=직원들을 배려하는 문화도 강하다. 합격을 하면 사장 명의로 부모에게 꽃바구니를 보낸다. "훌륭한 인재를 키워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도 곁들인다. 다음은 지난해 12월 입사해 충남 대산 공장에 배치된 기술팀 한민(25)씨의 일화.

배치되고 얼마 뒤 신입 사원들과 공장장의 간담회가 있었다. "부족한 게 뭐냐"고 묻기에 "서울 가는 회사 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당장 버스가 마련됐다는 것.

경력이 많지 않은 직원들에게 일과 권한을 맡기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말 입사한 소매부문 한정민(26)씨는 입사 5개월 만인 지난달 말부터 회사 내 각 부서 대표자들이 정기적으로 운영 개선 회의를 하는 '베스트 프랙티스 회의'에 소매부문 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부서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네가 한번 해보라"고 일을 맡겼다. 대표들은 대체로 대리에서 과장급. 한씨 나름대로 주유소 운영 개선안이 있었지만 다들 선배라 처음엔 의견을 내기가 조심스러웠다고. 일단 같은 부서 과장과 아이디어를 얘기했더니 "좋은 아이디어인데 왜 쭈뼛거리느냐. 당당히 얘기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이 꼭 주위에 알리고 싶다는 사족 하나. 가끔 주위에 현대오일뱅크 주유권을 선물할 때가 있는데, 회사에서 공짜로 받은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기를. 기왕 선물을 할 바에야 회사에도 이익이 생기게끔 주유권으로 하자는 애사심에서 주머니를 털어 산 것이다.

◆채용은 이렇게=현대오일뱅크가 원하는 인재는 '도전하는 젊은 프런티어'다. 신입사원들에게도 창의성을 발휘할 무대를 주는 만큼 도전 정신으로 무대를 휘어잡을 인재를 원한다는 것이다. 채용은 서류 전형과 4단계 면접을 거친다. 서류전형에서 제일 중시하는 것은 자기소개서. 입사 지원 동기 등 네 가지 질문을 주고 A4 용지 한 장 정도로 답하라고 한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분명히 나타내는 게 점수를 따는 요령.

1단계 면접은 그룹 토의, 2단계는 임의로 주제를 주고 10분 뒤에 3분 정도 발표하게 하는 프레젠테이션 면접이다. 창의성과 순발력을 보는 것으로 '10만원밖에 없는데 친구 세 명이 동시에 10만원만 빌려 달라고 한다면 어떤 성격을 가진 친구에게 줄 것인가' 등을 묻는다. 3차 임원 면접에선 인성과 직무 적성을 점검한다. 원유 구매 등 외국어가 필요한 부서 근무 희망자는 영어 인터뷰도 한다. 마지막 면접은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한다. 영업직인데도 갑자기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영어 실력보다는 임기응변 능력을 보는 것이다.

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신입사원

경기도의 직영 주유소를 관할하는 경기직영본부의 한갑산(27.사진)씨. 지난해 말 입사한 그는 경희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나왔다. 1700여 명 현대오일뱅크 직원 중에 유일한 음대 출신이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피아노로는 최고가 될 수 없겠다. 기업에 들어가서 어떤 방면에선가 최고가 되어 보자'는 생각에 경영학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신문에서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에 대한 기사를 봤다. '현대오일뱅크는 직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감성 경영을 펼친다'는 문구가 눈에 쏙 들어왔다.

"음악을 전공해 경영학도들보다 훨씬 감성이 풍부한 제가 이 회사에 들어가면 최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공을 불문하고 가능성을 판단해 뽑는 현대오일뱅크지만 면접에서 "음대 출신이 왜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소비자의 감성이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시대에 앞으로는 문화와 마케팅을 결합한 것이 먹힐 수 있다. 그건 내가 제일 적임자일 것이다"고 답했다.

목표는 경영이지만 일단 영업이 기본이라는 생각에 영업직을 택했다. 지금은 경기직영본부에서 선배 사원들과 함께 주유소를 돌며 관리 요령 등을 배우는 중. 예능계 출신답게 주유소를 작은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아이디어가 있다. 그는 취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공 때문에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마십시오. 대학에서 배운 지식 중에 기업에서 바로 활용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들어와서 얼마나 열정을 갖고 일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가 일도 열심히 하면서 고객을 초청한 저녁 자리에서 멋지게 피아노 연주도 한 곡 한다면 모두 저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그러니 저처럼 독특한 전공을 가진 분들일수록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고, 그에 더해 전공은 자신만의 '부가가치'로 활용하겠다고 생각하세요."

권혁주 기자

Q&A

Q: 올해 채용 계획은.

A: 다음달 말에 엔지니어 20~30명을 뽑고 9월에 대졸 사무.영업직 30~50명을 채용한다.

Q: 임금 수준은.

A: 대졸 초임 연봉이 3100만원. 여기에 최대 연봉의 50%까지 성과급이 붙는다. 완전연봉제여서 2년차부터는 성과에 따라 연봉이 다르다.

Q: 출퇴근 시간은 잘 지켜지나.

A: 일에 따라, 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 지켜진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는다고 눈치보며 남아 있거나 하는 일은 없다.

Q: 희망하는 부서에 배치되나.

A: 지원서에 희망하는 분야를 적고, 대부분 그에 맞춰 뽑는다. 거의 다 희망 부서에 배치한다.

Q: 지방 근무도 많은가.

A: 영업직은 지방 근무를 한다. 근무지는 자신의 희망을 최대한 배려하지만, 100% 모두가 원하는 곳에 근무할 수는 없다. 타지에 가는 경우 주거비 보조 등 지원 제도를 마련 중이다.

Q: 해외에서 일할 기회는.

A: 별로 없다.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이 있으나 본사에서 나간 직원은 세 명뿐이다. 그것도 최소한 선임 과장 정도는 돼야 기회가 온다.

Q: 복장 규정이 있나.

A: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어도 되는 금요일을 빼고는 항상 정장 차림이어야 한다. 현대오일뱅크는 '비즈니스 매너'를 중시한다.

Q: 대주주가 지분을 판다는 얘기가 있다.

A: 70%를 가진 아랍에미리트(UAE)의 투자회사 IPIC가 절반을 사갈 제휴 파트너를 찾는 중이다. 매각 뒤엔 2012년까지 2조5000억원을 투자해 정제 고도화 설비를 증설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Q: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나.

A: 전엔 그랬지만 이젠 아니다. 술 잘 마시는 사원보다 맛집을 많이 아는 직원이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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