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ㆍ짜장면ㆍ짱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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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7면

자장면은 하루 700만 그릇 이상 팔리는 가장 대중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다. 어릴 적 추억에서 자장면이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병훈련소에서도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자장면이다. 그런데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라고 써야 하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경음이 국민 정서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표준어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경음이 없으면 ‘짜장면’의 맛이 나지 않는다.

김태경ㆍ정한진의 음식수다

“2005년에 인천에서 자장면 100주년 축제가 있었어. 1905년 문을 연 중국집 ‘공화춘’이 처음 자장면을 팔았다고 추정해서 개최한 셈이지. 그런데 자장면은 초기에는 분명 지금과 다른 형태였을 것 같은데.”

“물론 자장면의 원류가 되는 자장몐(炸醬麵)이 중국에 있지요. 이름 그대로 강한 불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볶은 중국식 장을 면과 섞어 먹는 음식이에요. 요즘은 중국에 가서 베이징(北京) 자장면을 맛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자장면의 고향은 산둥(山東) 지역이죠.”

“한국 최초의 자장면은 산둥 자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네. 한국 화교(華僑)의 90% 이상이 산둥 출신이니까.”

“그렇죠. 그런데 중국식 장에 캐러멜을 섞게 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단맛이 나는 한국식 자장면이 탄생했지요.”

아마도 우리 식생활에 이렇게 뿌리를 깊이 내린 외래 음식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에 ‘자장면은 한국 음식’이라는 주제로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예전에는 ‘짱깨집 가자’라는 말을 많이 썼지. 중국인을 비하해 부르는 이 말을 생각 없이 썼으니까. 어느 글에서 보니 ‘짱깨’라는 말은 ‘장궤(掌櫃)’라는 말에서 연유했다는군. ‘장궤’란 주인장 또는 사장을 뜻하는 말인데 흔히 중국요리집에서 중국인들끼리 ‘사장, 나 왔어’라며 인사할 때 들리는 ‘장궤’라는 단어를 한국말로 ‘짱깨’라고 부르게 됐다는 거야.”

“중국인을 비하하려는 의식이 결국 한국을 차이나타운 없는 유일한 국가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죠.”

임오군란 당시에 청나라 군대를 따라 화상(華商)이 들어온 것이 화교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져 화교 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일제시대 말에는 한국 화교가 8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각종 제도 제한과 차별대우, 특히 1960년대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은 결국 화교들의 생존권을 박탈한 셈이었지. 게다가 ‘외국인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화교처럼 계속 거주하는 사람도 최근까지 2년마다 체류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각종 직업 취득에 있어 차별을 감수해야 했으니.”
7080년대 화교들은 이런 차별을 견디다 못해 미국· 대만·일본 등으로 떠나고 말았다. 현재는 2만여 명만 남았다.

“그러니 화교들은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장면을 만들거나, 한의사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하죠.”

우리는 자장면이라는 음식에 그렇게 너그러우면서도 타민족에 대해 그토록 배타적인 셈이다. 어쩌면 ‘짱깨집’에서 먹는 ‘짜장면’은 그토록 모순적인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자장면이 한국인의 추억뿐 아니라 이 땅에 정착한 화교의 삶과 애환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산둥성 출신 주인이 운영하는 서울 연희동 ‘대복장’(02-336-6590)은 그러한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중국음식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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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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