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정원에 야채 길러 꼭 먹고 말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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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
윌리엄 알렉산더 지음, 황정하 옮김
바다출판사, 320쪽, 9800원.

마당 한 가득 푸릇푸릇하다. 아내는 아침마다 막 따온 토마토와 상추로 샐러드를 준비한다. 모두 농약 없이 키운 유기농이니 안심이다. 주말엔 가족들과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만 가벼이 밭을 가꾼다.

'마당 넓은 집'에 대한 우리의 로망은 대개 이렇다. 그리고 그 꿈은 언제나 잔인한 현실로 무참히 깨진다.

이 책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의 '고군분투.좌충우돌 원예 경험담'이다.

그가 소박하고 아늑한 정원을 꿈꾸는 순간 정원은 전쟁터로 변한다. 일감을 맡긴 조경전문가는 약속을 안 지키고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생명이 질기다. 잔디나방애벌레의 번식력은 기가 찰 노릇. 토마토를 노리는 야생동물 때문에 전기 울타리를 치지만 우드척에겐 그마저도 안통한다. 사투는 한없이 심각한데 필자의 화법에는 낄낄거릴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그렇게 '미칠 것 같이' 일한 뒤에야 깨달음에 미친다. "다른 사람이 로또를 사듯, 나는 밭에서 도박을 한거야." 매년 백지에서 시작하는 마법에 걸려 "올해 흉작은 잊자. 내년엔 좀더 잘익은 야채를 먹을 수 있을 거야"라는 '정원건망증'이 그를 지치지 않게 만든 셈이다.

책을 읽고보니 토마토 한 개에 64달러가 들었다해도 꼭 적자만은 아닌 듯 싶다. 희망을 가진다는 건 그보다 훨씬 비쌀 테니까. 뭔가 키우고 싶어지는 봄이다.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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