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장편 『나는 소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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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원미동 사람들』의 작가로 알려진 양귀자씨가 시쳇말로 전혀 양귀자 답지 않은 작품을 썼다.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세밀하게 읽어내는 중요한 리얼리즘 작가로 알려져 왔던 양씨가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려운 전작 장편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살림간)을 펴낸 것이다.
사실상 소설처럼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장르도 드물다.
훌륭한 소설에 대한 요구로서 작가의 내적·외적 체험이 깊이가 있고 풍부해야한다, 소설은 그 무엇보다 예술적이어야 한다, 아니다 소설은 그 무엇보다 서사적 특성이 강한 장르이므로 사실성에 충실해야하며 당연히 역사 의식이나 사회의식을 가져야 한다, 아니다 소설도 예술인만큼 사실성과 함께 상징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라는 주장들이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만 보아도 소설이 그 얼마나 덩치가 큰 장르인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소설이 그렇게 덩치가 큰 장르인 만큼 그중 한가지 요구 조건이 지나치게 당위적으로 오랫동안 강요되게 되면 스스로 반발의 몸짓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양씨의 『나는 소망한다…』는 그런 반발의 몸짓의 결과다.
내게는 그 반발의 몸짓이 꽤 중요해 보인다.
일반 독자들로부터 비교적 멀어져 버렸던 우리시대의 중요한 작가들을 독자와 가깝게 해줄 수 있는 계기가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망한다…』는 우선 재미있다.
그 재미는 작가가 모처럼 자유롭게 풀어놓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온다.
작가가 소재로 삼은 내용은 남성본위의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제도적 폭력에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여성의 분노와 반항이라는 지극히 사실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양씨는 그 제도적 폭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얼마나 음흉하고 주도면밀하게 행해지는지, 그에서 벗어나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찬찬히 모색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신화속의 아마조네스를 연상시키는 강민주라는 여성을 등장시켜 활약하게 만든다.
그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강민주라는 여성은 이 세상을 위해 싸우는 여성 전사가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항해 싸우는, 아니 이 세상 전체의 폭력과 대항해 싸우는 하나의 신화적 존재가 된다.
그녀가 신화적 존재라는 것은 강민주가 강민주라는 한 인물의 전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고 폭력에 분노하는 모든 사람 속에 공히 살아있는 존재로 확대될 수 있을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그래서『나는 소망한다…』는 읽는 이가 남성이건 여성이건 자신을 강민주와 동일시해 작품속에 빠져들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나는 소망한다…』을 덮으면서 나는 소설이라는 그 커다란 몸집을 우리가 그 얼마나 째째한 틀에 가두려 했던가를 몽롱한 가운데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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