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작은 거인”/전병관 「금」들자 진안고향집 함성 메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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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가족들 “그동안 마음껏 못먹었는데…” 눈물
『와! 와!』『우리 아들 장하다.』
1백55㎝의 「작은 거인」 전병관(23·해태)이 금을 번쩍 올리는 순간 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고향집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한국역도의 기린아 전병관선수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순간 고향동네도 올림픽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열대야 현상으로 저녁 늦게까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 박옥수씨(49)와 친척·마을 주민 등 50여명은 TV앞에 앉아 병관이의 금메달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우리 아들이 해냈다!』
『우리동네 자랑 병관이 만세!』
28일 오전 3시30분쯤 전병관이 강력한 우승 라이벌인 중국의 류슈빈을 누르고 금메달을 거머쥐자 환호성이 새벽 공기를 가른채 인근 마이산을 진동시켰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지만 전병관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어머니 박씨는 축하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번째 전화는 27일 TV방송 출연관계로 서울에 상경한 아버지 전덕권씨(50). 서울 여의도맨하탄호텔에서 아들의 금빛 낭보를 손에 땀을 쥐고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 전씨는 넷째아들 병선군(20·홍익대 산업공학과 1)과 함께 28일 오전 3시30분쯤 전 선수의 금메달 확보 소식을 TV를 통해 확인한 순간 바로 집으로 전화해 가족들과 감격의 순간을 나눈 것. 남편의 전화를 받는 순간 박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기쁨의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마이산정기를 받고 태어난 「작은 거인」전병관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한번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든 끝장을 내고야마는 대단한 고집불통이었다.
전병관선수가 역도에 입문하게된 것은 지난 82년 마령중 1학년때. 당시 이 학교 체육교사였던 정인영씨(40·현 이리고 재직)의 권유로 학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아래 역도를 시작하게 됐다.
전 선수는 역도에 발을 들여놓은지 1년만인 83년 제12회 전국소년체전(전주)에서 중등부 우승을 차지,천부적인 소질을 발휘했다.
이때부터 전 선수는 역도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2년만에 최연소(당시 17세)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광을 안았다.
전병관선수가 금메달을 딴데는 어머니 박씨의 공도 컸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출전을 앞둔 1년전부터 밭농사일에 쫓기면서도 매일 새벽 집안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아들의 건강을 빌었으며 1주일에 두번씩 원불교 마령교당에 나가 금메달 획득을 빌었다.
박씨는 『병관이가 어려서부터 돼지고기와 두부를 즐겨먹었으나 휴가때 집에와 체중을 조절해야 한다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않을 때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며 『오늘의 병관이가 있기까지는 코치 선생님 등 모든 체육관계자 덕택』이라고 겸손해 했다.
박씨는 특히 『병관이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가 부담이 돼 잘못되지나 않을까 무척 걱정했다』며 모정을 내비쳤다.
전병관선수는 2남2녀중 장남이다.<진안=서형식·하철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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