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믿는 세태」를 부끄러워 하자/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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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보사 땅사건은 참으로 사람을 씁쓸하게 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 하나가 우리 사회의 온갖 부정적 요소들을 몽땅 쓸어담은 희화적인 축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땅만 사두면 일확천금할 수 있다는 부동산투기심리와 이를 이용한 토지사기꾼,한때 그것이 곧 신분의 상징이나 되는듯 했던 육사 몇기생,권력과 결탁해야 사업이 가능하고 번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재벌회사와 비자금,그 주변에 오버랩되는 정치인들의 이름들과 그들이 풍기는 부패의 냄새들…. 연일 신문 머리를 장식하는 사건을 좇으며 어처구니없어 하고,사는 재미가 없어지고,그래서 입맛 떨어진 사람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씁쓸한 땅사기 사건
이 사건의 직접적인 여파도 적지않은 것 같다. 시중의 사채꾼들이 꼬리를 사리는 바람에 제2금융권에는 찬 바람이 불고,증권은 바닥을 헤매고,고위 공직자들이나 정치인들은 행여 불똥이 튈까 몸을 움츠려 정·관·재계가 모두 한여름 더위속에서 땅사기 추위에 떠는 꼴이 됐다.
이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선뜻 속단하기는 어렵다. 허술한 모양새로 봐서는 검찰이나 국방부의 주장처럼 단순사기일 것도 같다. 아니면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건의 법적인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간에 이 사건이 보여준 부정적인 상징성 만큼은 분명하다.
그것은 정부의 법치능력에 대한 불신이 바닥모르게 깊어지고 있다는 것,지도층의 전면적인 부패에 대한 확신의 공감대가 엄청나게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이 터지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것 같았다. 이 사건은 정치적 흑막을 가진 사건이고,그리고 그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검찰은 사기가 2중,3중으로 얽히고 속지 않을 만한 큰 회사가 속아넘어 가는 등 복잡하고 아리송한 구속이 있긴 하지만 얽힌 실타래를 풀고 보면 단순사기에 불과하다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사직당국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다.
○부정·부패에 무감각
하지만 그동안 「수서사건」같은 대형 비리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의 비리사건에는 으레 권력층이 개입했고 그 때문에 수사가 흐지브지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고위공직자·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가운데 만연해 있는 부패와 비리에 대한 불신 탓이다.
강남의 한 거리에는 갓 군복을 벗은 군장성출신들이 다투어 사무실을 낸다는데 그들은 어떤 자금으로 연구소를 운영하고 사무실을 유지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소위 괜찮다는 정부 부처를 나오고 할일 없으면 너도 나도 개인경제연구소나 학술연구소를 차린다는데 그런 자금은 어디서 조달되는지 요지경이라는 것이다. 재임중 정치자금을 상당히 빼돌렸다고 구설수에 올랐던 전임대통령은 과연 적진대통령 예우에 관한 규정에 따른 자금만으로 살아가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한다.
4년전 공직 취임 직후 5억 얼마라고 재산을 공개했던 현대통령은 퇴임후에 대비해 사가 주변에 경호용 건물을 짓고 있다는데 그 출처가 어딘지 밝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위가 석연찮으니 아래는 말할 것이 없다.
정권 말년이 되어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한건씩 올리려고 기를 쓴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도는 세상이다. 그래도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고위층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정치인이나 고위층들중엔 그들이 마치 성역에나 들어 있는듯 웬만한 부정이나 부패에 전혀 무감각한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개중에는 돈으로 여론을 사고,돈으로 정권을 사고,그리고 부족한 경륜이나 자질도 돈으로 메울수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로 인해 사회지도층 내부에 공범적인 부패와 부정의 고리가 생겨나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정보사 땅사건의 배후는 바로 이 원초적인 부패의 고리인 것이다.
○위기의식 갖고 감시
이미 「부패의 경고 등」이 붉게 켜진지는 오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해 정치인탓·정부탓만 하고 있을 일도 아니다. 우리들의 부패에 대한 무감각이 부패의 만연을 방조하고 묵인한 것이 아닌가 하고 되짚어 봐야할 계제가 된것 같다.
부패가 더이상 번지지 못하도록 고위공직자의 행태를 주목하고 고발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정보사 땅사건이 부패에 대한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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