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입맛도 사로잡은 '한정식 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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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70년대 거물 정치.경제인들이 즐겨 찾던 한정식집 '장원'의 여주인 주정순씨가 12일 오후 8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고인이 서울 청진동에 장원을 차린 것은 1공화국 말기인 58년 9월. 맛깔스러운 음식과 정중한 손님 대접으로 유명했던 장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면.조병옥.이후락씨 등 거물급 정.관계 인사와 이병철.정주영 회장 같은 재벌 총수들도 즐겨 찾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정부 부처를 초도 순시할 때 장원에서 고인의 유자차를 수백 잔씩 시켜 나눠 마셨다고 한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물을 정도로 고인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으론 당시 청운각.삼청각.오진암과 함께 한국 밀실 정치와 본거지란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종업원들에게 "술자리에서 보고 들은 얘기는 물론 손님의 술버릇이나 좋아하는 음식까지 평생 비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MP(헌병)'였다. 또 값이 아무리 비싸도 최고의 재료를 쓰고 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한때 종업원만 100여 명을 둘 정도로 잘나가던 장원은 여의도로 국회가 이동하면서 손님이 줄어 87년 문을 닫고 신문로로 옮겨 '향원'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했다. 그러다가 2004년 큰딸이 필운동에 다시 장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이재우(보고펀드 대표), 장녀 문수정(장원 대표), 차녀 이윤미(재미)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6시. 02-2072-2012.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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