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투쟁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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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얼굴) 전 한나라당 대표에겐 '투쟁의 추억'이 있다.

생김새는 단아하지만 10년 정치 인생의 고비에서 그는 투쟁을 피하지 않았다. 특히 4.25 재.보선 뒤 보름간 벌어진 경선 룰 투쟁에서 그는 정면으로 파고드는, 복싱으로 치면 인파이터 스타일을 선보였다.

박 전 대표의 투쟁의 추억은 그의 독특한 투쟁 스타일을 낳았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2004년 있었던 국가보안법 투쟁사를 거론했다.

박 전 대표 주변에선 이번 '경선 룰' 투쟁에 임하는 그의 심리 상태가 '국보법 투쟁' 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2004년 12월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안을 가지고 다수결에 따른 표결 처리를 강행하겠다고 압박했다. 여기에 한나라당 내 온건파는 "열린우리당 안의 일부를 수용하자"는 타협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 막무가내로 상정하려 한다면 실력 저지할 수밖에 없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대치 국면이 길어지자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더 이상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 순간 박 전 대표는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회의장은 썰렁해졌고 타협론은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투쟁 스타일=캠프 관계자들은 "박 전 대표가 캠프 내 최고의 투사"라고 말한다.

10일 회의에서 참모들이 "대표는 가만 계시고 우리가 공세를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그는 직접 기자들에게 "이대로면 경선 없다" "1000표 드리겠다"는 의표를 찌르는 언행으로 참모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3대 투쟁 스타일'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①'원칙'을 반복적으로 말하기="강재섭 대표의 안은 원칙에 어긋난다" "원칙이 무너졌다" 등 박 전 대표는 '경선 룰' 공세를 펴며 '원칙' 얘기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는 유불리나 실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②코멘트 한마디의 위력=9일 대전 행사를 마치고 떠나려던 박 전 대표는 '강 대표의 중재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기가 막히다"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다 어그러졌다" "기네스 북에 오를 일" 등이 한마디 코멘트의 위력을 보여 주는 언급으로 회자된다.

③의표를 찌르는 여성적 감수성="1000표를 드리겠다" "기가 막히다" 등의 공세는 듣는 이들의 허를 찔렀다.

황상민 연세대(심리학) 교수는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받은 교육과 부모를 잃은 뒤 겪은 시련이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깊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용호.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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