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 오른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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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창호5단이 최근 기네스북에 올랐다.
프로바둑의 세계챔프사상 최연소기록이 인정된 것.
지난번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전」에서 린하이펑(임해봉)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세계정상에 우뚝 섰었다.
한국프로기사가 기네스북에 오른 것은 작년12월의 서능욱9단이 처음이며 이5단이 그 두번째 인물인 셈인데 서9단은 KBS 88체육관에서 1백11명의 아마추어를 상대로 다면기를 두어 일본의 백강치출7단이 세운 1백2명의 종전기록을 깨뜨렸기 때문이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서9단과 이5단의 기록은 과연 깨질지 의문이다.
서9단은 1백11명 다면기 때 점심도 거른 채 7시간40분간 줄기차게 두어 70승41패의 전적을 거두었는데 『서능욱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모두들 감탄했었다.
특히 이5단의 16세 챔프는 더욱 그렇다.
기성으로 추앙받아온 불세출의 천재 우칭웬(오청원)9단은 『일찍이 바둑은 사람공부가 우선되지 않고서는 결코 대성할 수 없다』고 갈파한바 있다.
평생을 다해도 이루기 어려운 그 사람공부틀 이5단은 16, 17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느낌이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5단은 90년과 91년 연속 최우수기사상을 받았다.
지난 2년동안 한국기원소속 전체 프로기사중 가장 뛰어난 전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매년 최우수기사에게는 대우자동차 제품인 르망승용차가 부상으로 수여된다.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이 한국기원 총재를 맡고나서부터 마련된 제도다.
그런데 이5단은 90년에 받은 르망을 한국기원 사무국에 업무용으로 기증하여 주위를 감격(?)시켰으며 지난 5월에 받은 91년도분은 그동안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 해준 부친 이재룡씨(44) 에게 드렸다.
마침 이씨는 얼마 전 운전면허틀 취득하고 다음 수순을 찾던 중이라 안성맞춤의 멋진 선물이 되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한국기원이 설립된 지 반세기가 다 되지만 프로기사가 자신이 받은 상품을 기증한 것은 이5단이 처음이다.
『이창호야말로 한국프로기단의 귀족』이라고 「이창호귀족론」을 말하는 평론가도 있다.
집안의 경제사정도 좋은 편이어서 헝그리정신과는 거리가 멀고 어린 나이라 부양가족도 없어 오직 명예만을 위해 싸우며 세계 바둑황제 조훈현의 유일한 제자이니 어찌 귀족이 아니냐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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