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택시」에 앞서 해야할 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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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통부는 모범택시제도라는 이름으로 오는 10월께부터 현행 요금의 2∼3배를 받는 배기량 2천㏄급의 고급택시를 운행토록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통부의 이러한 계획은 타당한 측면과 비현실적인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현재 시민들의 택시에 대한 가장 큰 불평은 원하는 때 마음대로 타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요금의 고급택시는 분명히 이런 불만을 줄이는데 부분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시민들의 택시에 대한 또 다른 불만거리인 불친절이나 승차거부,합승강요 등도 고급택시를 타는 경우에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더 내더라도 필요할 때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음은 현재 불법영업행위를 하는 자가용 승용차가 1만5천대나 되는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택시는 고급교통수단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현재처럼 대중교통수단이 되어 있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이런 점에서 고급택시제도는 일단 시도해볼만한 착상이긴 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현 실정에선 그 시행을 서둘러서는 안되며 시행하더라도 극히 한정된 범위안에서부터 시작해 점진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시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새로운 부작용을 파상시키지 않을 준비부터 착실히 한뒤 요금을 2∼3배 물더라도 이용하고 싶다는 수요만큼만 우선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고급택시제의 도입은 시민을 고요금에 의해 강제적으로 택시로부터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시민들이 택시를 타고 싶어 타는가. 만약 신속하고 쾌적한 대중교통수단만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면 현재와 같은 택시승차난은 빚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현재 택시의 절대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89년의 경우만 해도 택시 대당 인구수는 동경이 2백22명인데 비해 서울은 2백8명이었다. 서울의 택시수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같은해 동경의 택시수송 분담률은 6%인데 비해 서울은 16%나 됐다. 이는 기본적으로 서울의 택시요금이 싸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의 대중교통체제가 동경에 비해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다.
고급택시를 새로 투입하면 일반택시의 증차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출퇴근때나 일반 용무때 택시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그만큼 택시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이들을 버스나 지하철이 흡수해줄 체제가 되어 있는가. 현재로선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당국은 대중 교통수단의 대종인 버스대책을 우선으로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그런 대책이 선행되지 않은 고급 택시제는 시민의 교통비부담,버스 및 지하철의 승차난,자가용 보유의 촉진,일반택시의 요금인상 압력가중,시민간의 위화감,택시제도의 복잡화 등의 부작용만 빚어내게 될 것이다. 모범택시 제도를 부분적으로 시행한다해도 기본요금은 계획보다 높여야 하고 「콜」기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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