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성 없는 경기논쟁/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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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소비 힘입은 실속없는 성장」「서비스업 이상비대 제조업 위축」「인력난에 기업들 아우성」「물가는 뛰고 외채는 쌓여」.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언론의 헤드타이틀을 장식하던 제목들이다.
그러나 요즘은 전혀 다른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불황 전업종 강타」「먹고 마시는 장사도 안된다」「이대로 나가다간 재기불능 될지도」.
최근 이같은 주장에 접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우리는 정말로 「냄비성」 체질이거나 단견에 젖어 있는게 아니냐는 점이다.
사람을 자리에 새로 앉힌지 두어달만 지나면 별의별 평가가 내려지는 성급함이 한 나라의 정책골간에까지 미치면 곤란하다.
작년 하반기이후의 경제정책은 물가불안·국제수지적자라는 경제현안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많은 전문가·언론들도 옳은 방향이라고 동조했었다. 그 결과 최근들어 그같은 문제가 다소나마 개선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경제의 거품이 어떻고 서비스업 활황이 문제라던 주장이 어느날 갑자기 꼬리를 감추고 있다.
사람값이 올라 기업을 못해 먹겠다는 비명이 여전한데 실업률이 조그 높아진 것을 두고 야단이다. 인력난 해소와 실업문제를 같이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고금리만해도 그렇다. 기업들의 높은 금융비용이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통화당국도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는 물가를 잡는 것이 선결문제다.
고금리를 주장하면서 물가상승률을 거론치 않는 것은 기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금리에서 물가상승분을 빼야만 실질적인 금융비용이 계산된다. 그러나 금리가 높다고 주장하는 기업인중에서 인플레를 같이 언급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인플레아래서는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 물가가 낮아져야 금리가 떨어지고 기업들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을 위해 허리띠를 좀 졸라매자는데 못참는 것이다.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높은 성장을 이룩하는 것은 모든 경제관료나 학자들의 꿈이다. 그러나 이같은 최선은 인류 경제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안정과 성장은 한꺼번에 갈 수 없는 서로 다른 두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택」인 것이다. 실속없는 성장보다는 안정을 다지자는 쪽으로 선택해 놓고 태도를 돌변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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