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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詩가 술술술, 文人들의 중국 기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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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내로라하는 한국 대표 문인들과 여정을 같이했으니 여행은 졸지에 중국 문학 풍류 기행이 됐다. 여기에 하나 더. 글쟁이들과 함께 길을 나섰으니 어찌 일이 없었겠는가. 문학은 길 위에서 여무는 법이다.

‘중국의 베네치아’로 불릴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우전(烏鎭).


중국에 다녀왔다. 상하이(上海)에서 ‘한ㆍ중 작가회의’를 마치고 사흘 동안 중국 남부의 항저우(杭州)ㆍ우전(烏鎭)·퉁리(同里)ㆍ사오싱(紹興) 등을 돌아다녔다. 하나 여느 유람과는 달랐다.

우선 동행한 면면이 달랐다. 황동규ㆍ정현종ㆍ김주영ㆍ김치수ㆍ김주연ㆍ오정희ㆍ이시영ㆍ임철우ㆍ박상우ㆍ성석제ㆍ천운영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과 여정을 함께했다. 하여 여행지도 남달랐다. 여느 관광상품에서는 찾기 힘든, 그러나 문학적으로 유서 깊은 장소를 들른 것이다. 거기에 ‘한국 문단의 중국통’ 성민엽 서울대 중문과 교수와 홍정선 인하대 국문과 교수의 현장 강의가 곁들여졌다. 여행은 졸지에 한국 문인들의 중국 문학기행이 됐다. 여기에 하나 더. 글쟁이들과 함께 길을 나섰으니 어찌 일이 없었겠는가. 그래, 문학은 길 위에서 여무는 법이다.

2.루쉰의 고향 사오싱에 선 셴헝 주점. 루쉰의 단편소설 ‘쿵이지’의 주인공 쿵이지 동상이 손님을 맞는다.3.1000년 역사의 퉁리(同里)는 ‘다리의 고을’. 강물 위 낙엽을 거두는 뱃사공의 모습이 한가롭다. 4. 소동파 유적을 돌아보고 나오는 배 안에서 정현종 시인이 즉흥시를 읊고있다.


술 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해지네

송(宋)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ㆍ1036∼1101)는 ‘음주’란 시에서 ‘가끔 술 마시는 즐거움이 있어 빈 술잔이라도 늘 들고 다녔다’고 읊었지만, 한국 문인들의 술잔은 하루라도 비는 날이 없었다. 으뜸은 역시 소설가 김주영씨였다. 김주영씨는 “내년이면 나도 고희(古稀)”라며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ㆍ712∼770)를 인용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너스레라면 한가락한다는 박상우ㆍ성석제ㆍ천운영 등 30∼40대 작가들도 그 앞에선 죄다 나가떨어졌다.

풍류 또한 빠질 리 없었다. 사오싱에는 왕희지(王羲之ㆍ307∼365)가 풍류를 즐겼다는 난정(蘭亭)공원이 있다. 만취한 왕희지가 글씨를 썼다가 다시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중국에서 가장 빼어난 글씨로 일컬어지는 ‘난정서(蘭亭書)’가 탄생한 곳이다. 경주의 포석정처럼 거기에도 ‘유상곡수(流觴曲水)’가 있었다. 왕희지가 벗들과 함께 굽이도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지으며 놀던 곳이다. 황동규ㆍ정현종 등 한국의 시인들도 잔을 띄웠다.

술자리에선 ‘소호도선(小糊塗仙)’이란 술을 놓고 즉석 강의가 열렸다. 강사는 물론 성민엽 교수. 성 교수에 따르면 술 이름 ‘소호도선’은 ‘聰明難 糊塗更難(총명난 호도갱난)’이란 한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뜻은 ‘총명하기는 어려우나 어리석기는 더 어렵다’. 술 이름의 가운데 두 글자 ‘호도(糊塗)’는 지금도 중국에서 ‘바보’를 가리키는 관용어란다. 그러자 누군가 입을 열었다. “서사가 담긴 술이로군.” 그 뒤로 ‘소호도선’은 일행의 애용주가 되었다.

어느 주점에서였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현종 시인이 펜을 들어 벽에 글을 적었다. ‘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삼배통대도 일두합자연)’.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ㆍ701∼762)의 그 유명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나오는 구절이다. 풀이를 하자면 ‘술 세 잔을 마시면 큰 뜻에 통하고, 술 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해지네’. 결국 술을 더 마시자는 뜻이었다.

소동파에 질 수야 없지

항저우엔 유명한 시후(西湖)란 호수가 있다. 호수 복판에 호심도(湖心島)란 섬이 떠있고, 섬 안에 항저우 태수를 지낸 소동파의 관련 유적이 들어서 있다. 그 규모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평가 우찬제 서강대 교수가 “이번 여행의 교훈이라면 문학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일이란 걸 확인한 것”이라며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정현종 시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한국에서 이름값이나 한다는 문인들이 소동파를 보고 가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소”라며 즉흥시를 읊기 시작했다.

서호에 왔네 / 삼담인월도 / 스물네 명대낮인데 달이 스물네 개가 떴네 / 관광을 하면 / 비범한 사람들도 보통 사람이 되는 법 / 우리는 서호에 와서 / 비로소 보통 사람이 되었다네 / 이번 여행의 / 제일 큰 소득

박수가 쏟아졌고 비평가 김주연씨의 즉석 비평이 이어졌다. “정현종의 시가 드디어 보통시가 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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