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걸음 투표”일 소야의 전술/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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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 참의원에서 사회당과 공산당이 PKO 법안통과 저지를 위해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소걸음(우보)전술을 쓰고있다. 소걸음 전술은 투표과정에서 소처럼 느릿느릿 걸어 시간을 끄는 작전이다. 이같은 지연전술로 국회 회기말까지 시간을 끌어 법안이 자동폐기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 의원이 자신의 의석에서 일어나 단상에 설치된 투표소까지 가는데 무려 30분 이상 걸린다. 이는 소수의석인 야당이 합법적으로 투쟁하는 한 방법이다.
일본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소걸음 전술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47년 11월 제1회 특별국회 때다. 제1차 가타야마(편산철) 내각시대로 탄광국가 관립법안에 대한 중의원 심의에서 이에 반대하는 자유당 등이 이 전술을 썼다.
그후 지금까지 8차례의 소걸음 전술이 쓰였다. 가장 최근 사용된 야당의 소걸음 전술은 88년 12월 소비세 도입 등 세제 관련 6개법안 심의 때다.
야당은 운영위원장 불신임 결의안 등 4개 결의안을 제출,소걸음 전술로 시간을 끌었다. 1개 결의안 처리에 최고 5시간이나 소비됐고,4개 불신임안 처리와 세제관련법안 처리에 모두 20시간5분이나 걸렸다.
현재의 사회당은 당시보다 의석이 1.5배나 는데다 공산당과 연합해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6일의 이노우에 다카시(정상효) 참의원 운영위원장 해임결의안 투표는 무려 11시간30분이나 걸렸다. 의원신상에 관한 문제는 기명투표를 해야하는 국회법을 사회당이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놓고 일본에서는 자민당과 사회당 모두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국회가 무엇을 심의하는지 모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조일)신문이 6∼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PKO 법안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37대 38로 비슷하게 나왔으나 소걸음 전술에 대해서는 64%가 당장 중지하라고 응답했다.
소수당이 다수결이란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국정을 마비시키는 것에 대한 강한 비판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투표를 버튼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같은 사태는 자민당이 충분한 심의를 하지않았기 때문이라며 자민당에 대한 비판여론도 높다.
농성 등 물리적 저항도 문제지만 평화적·합법적 방법이라는 소걸음 전술도 지나치면 문제라는 것을 일본 국회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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