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총리 대선 조기총선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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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통령 선출을 놓고 친 이슬람 정부와 세속주의 야권이 한판 대결을 벌여온 터키 사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사진) 총리는 야권이 요구하는 조기 총선을 받아들이고, 대통령제를 간선에서 직선으로 전환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1일 밝혔다. 야권과 세속주의 세력의 보루인 군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국민의 지지를 이용해 집권당 출신의 친이슬람 성향 대통령 선출을 밀어붙이겠다는 계산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여당 회의를 연 직후 "11월로 예정됐던 총선을 6월 24일이나 7월 1일에 실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7일 치러진 의회의 대통령 선출 1차 투표를 무효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야권은 의회 투표 시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참석하지 않았다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터키에선 최근 이슬람 전통을 강조하는 세력이 의회를 장악한 데 이어 간접선거로 뽑는 대통령직마저 차지하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1923년 공화국 건국 때부터 국시인 세속주의를 주장하는 야권이 강력히 반대했으며, 세속주의의 보루로 통해온 군부가 반대성명을 낸 데 이어 지난 주말 100만 명 넘는 시민의 항의 시위까지 벌어지는 등 혼란이 계속됐다.

터키 국부인 케말 파샤가 주창한 세속주의는 과거 오스만 튀르크 제국 때 유지했던 이슬람 종주국의 지위를 버리고, 대신 정교(政敎)분리.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2일 "터키의 세속주의 세력이 수세에 몰렸다"고 분석했다. 세속주의 성격상 대통령 직선을 거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권당은 외무장관인 압둘라 귈 대선 후보에 대한 의회 재투표도 3일 다시 실시해 세속주의 세력을 압박할 예정이다.

에르도안 총리가 세속주의 세력의 전면 공세에 일시 후퇴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조기 총선을 실시해도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냐 서구 국가냐의 지향점을 둘러싼 터키 사태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친이슬람 정부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세속주의 세력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불안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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