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글 인터넷 올려 3자 명예훼손 땐 美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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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10면

인터넷에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쓴 사람은 당연히 그 사람이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면 남이 써 놓은 글을 단순히 배포하거나 전재한 사람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을까.

[해외 법률 산책]

오랜 논란 끝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얼마 전 “명예훼손으로 인한 책임은 직접 글을 쓴 원작자에게만 있고, 단순히 이를 배포하거나 전재한 자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배럿이라는 의사가 인터넷 토론그룹을 운영하는 기업 ‘로젠탈’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은 로젠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근거는 1996년 제정된 연방법인 통신품위법이다. 이 법의 관련 규정은 다소 복잡하다.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의 서비스 제공자 또는 사용자는 다른 정보 콘텐트 제공자가 제공한 정보에 관해 그 발언자 또는 출판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이 제공한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거나 전재한 사람은 그 정보를 직접 말하거나 공개한 것으로 보지 않으므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예훼손에 대한 면책 범위가 넓은 것이다. 인터넷 환경에서도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압하지 않으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면책을 허용한 판결은 이전에도 미국에서 몇 차례 있었다. 1997년 제4 연방항소법원의 ‘제란(Zeran) 판결’이 중요하다. 이 판결은 문제의 정보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단순한 전달자라 하더라도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건 담당 재판부는 “만일 그런 입장을 취한다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자기가 몰랐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 인터넷 콘텐트를 적극적으로 감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배럿 판결’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물론 이용자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면책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원은 면책을 인정할 경우 명예훼손적인 정보를 고의로 유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우려하기는 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자율적 규제를 고취하고자 하는 통신품위법의 취지에 비춰볼 때 면책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에서도 온라인상의 명예훼손이 법원에서 여러 차례 문제됐다. 한국 법원의 대체적인 입장은 명예훼손 사실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와 이를 알면서 고의로 유포한 이용자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판결과는 상반된다. 유포 행위에 대해 우려를 표한 점에서는 한국 법원과 미국 법원이 같지만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라는 서로 부닥치는 가치 사이에서 다른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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