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匠人과 현대적 브랜드의 아름다운 공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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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4면

나무틀에 맞춰 수작업으로 구두를 만들고 있는 모습.

고즈넉한 분위기의 시골 농가. 헛간 비슷한 작업실 안.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작품을 매만지는 장인과 그를 바라보는 제자들.

‘장인(匠人)의 공방(工房)’ 취재 계획을 세웠을 때 머릿속으로 상상한 장면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장인도, 공방도 기자의 상상과는 동떨어진 현실 속에 존재했다. 오래된 건물, 비좁은 공간이긴 했지만 파리 시내 한복판, 여느 사무실과 다름없는 건물에 자리한 공방은 예술의 향기와 함께 산업의 분위기까지 풍겼다. 공방을 진두지휘하는 ‘메트르 다르’는 예술가이자 최고경영자(CEO)였다. 메트르 다르는 1994년부터 프랑스 문화부가 전통 공예 기술자를 보호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도예가, 인쇄 전문가, 유리 공예가, 부채 만드는 사람, 모자 제작자 등 분야도 다양하다. ‘거장(巨匠)’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제도는 우리나라의 중요무형문화재와 비슷한 개념.

샤넬 브랜드 소유인 이들 공방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와 함께 맞춤복인 오트 쿠튀르와 고급 기성복에 쓰일 예술적인 소품ㆍ장식 등을 제작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샤넬을 위해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루이뷔통,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등 수 개의 다른 브랜드에도 자신들의 공예 작품을 제공하면서 시장을 넓혀가고 있었다.

‘보티에’라는 구두의 장인으로 3대(代)째 가업을 잇고 있는 레이몬드 마사로는 “메트르 다르는 명예”라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를 통틀어 메트르 다르는 74명뿐이다. 샤넬의 공방 7개 모두는 이들 메트르 다르가 운영한다. 명품업체 샤넬은 프랑스 정부가 보증하는 ‘명예’를 지닌 이들 공방을 인수해 그들의 기술과 예술적 창의성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자국의 공예전통에 샤넬이란 브랜드 파워를 결합해 또 다른 명품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대적ㆍ상업적 계승에는 부진한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와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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