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날 것의 재료 잘 삭은 성숙한 인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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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02면

일본 도쿄에 가서도 수산시장부터 달려가는 사람이 조각가 정현(51)씨다. ‘시장(市場)의 맛’을 보기 전에 그 도시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정씨 지론이다. 그가 제철에 나는 각종 해산물이며 푸성귀를 꿰차는 솜씨는 이미 박사급으로 소문났다. 그를 따라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경동시장에 다녀온 이들은 “우리는 헛살았다”고 입맛을 다신다. 그는 비싸고 드문 것을 고르지 않는다. 촌스럽고 흔해서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만 제때 잘 골라 싱싱한 것을 제대로 요리한다.

도쿄 2개 화랑에서 개인전 연 조각가 정현씨

이런 재료에 대한 생각은 그의 조각 세계와 바로 통한다. “내가 인생을 어떻게 먹고 싶은가”를 그는 자신이 택한 조각 재료에 드러낸다.

오랜 세월 철로를 떠받치는 버팀목으로 쓰이고 나서 버려진 철도 침목, 긴 시간 차와 사람의 무게를 이겨내며 견뎌온 아스팔트 콘크리트에 그는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하찮은 것에서 발견되는 신선함, 날것에서 나오는 생명력, 예측을 불허하는 이미지, 느닷없음, 비탄으로부터의 해방,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헤맴들의 깊이가 내 조각의 힘입니다.”

그는 1992년 첫 개인전부터 인체조각 한 길을 파왔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로 뽑혀 연 기념전에 그는 ‘시간의 숙성’을 통해 가히 잘 삭힌 ‘홍탁삼합’ 같은 인체 조각을 내놓았다.

이런 그의 작업 정신이 평가받았음일까. 한국 작가 초대에 인색한 일본 화랑 두 곳이 한날에 정현씨의 개인전을 열었다. 4월 16일 개막해 28일까지 이어지는 ‘정현 개인전’은 도쿄 긴자 화랑 거리에 이웃한 ‘갤러리 도쿄 후마니테’(대표 도쿠라 유조)와 ‘갤러리 21+요’(구로다 유코)가 주최했다. 정현씨 작품에 반한 두 화랑 주인이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열리는 정씨 개인전을 빠지지 않고 찾아온 뒤 성사된 전시회다.

일본 문화계에서 한국통으로 알려진 산다 하루오(三田晴夫ㆍ마이니치신문 미술전문기자)는 “재료를 다루는 진실함과 치열함이 굉장하다. 인물을 탄생시킨 작가가 손이 아니라 창자로 작업한 것처럼 인상적이다”고 평했다. 정씨는 “내 작업은 격렬하게 폭발하고 발산한 뒤에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여 더 조용해지고 담담하며, 주장하기보다 성찰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내 인물은 우리가 어디서 왔나, 우리는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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