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병자에 인간적 죽음 안내 “파문”/독일(지구촌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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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회원 15,000명 「자살돕기 협회」돈벌이 혈안/처방제는 수면제·구토억제약 등이 고작
최근 독일의 한 사설단체가 회원들을 상대로 자살용 약물을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팔아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
문제의 단체는 「인간적인 죽음을 위한 독일협회」(DGHS)라는 이름으로 독일 아우그스부르크에 본부를 둔 일종의 회원제 자살 안내 클럽이다.
한스 헤닝 아트로트라는 47세의 정치학 석사가 회장으로 있는 이 협회는 이미 1만5천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베를린·뒤셀도르프 등 다수의 주요 도시에 지부도 갖고있다.
명칭이 시사하는 것처럼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 등으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통증을 겪는 환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책임하에 고통없는 인간적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협회가 내세우는 목표다.
협회의 학술국장인 의학자 쿠르트 쇼베르트박사는 가입 후 1년이 경과한 회원중 정신상태가 건전한 사람들에게는 「스스로가 책임지는 인간적인 죽음」이라는 협회책자가 제공된다고 말했다. 이 책자에는 각종 자살처방이 소개돼 있다. 예컨대 1백정의 말라리아 치료제와 수면제 10정,그리고 약간의 구토억제제로 구성된 소위 「죽음의 칵테일」이나 시안화칼륨(청산가리) 캡슐 2개 등이 처방의 일부다.
독일 형법상 자살방조는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상당히 오래전부터 협회가 「자살돕기」로 장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협회측은 여전히 약물을 직접 제공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협회가 그같은 사업을 계속해 왔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수년전부터 중풍으로 고통을 받아온 베를린의 빌마부인(56)은 1년6개월전 이 협회에 가입했다. 빌마부인은 이 협회의 베를린 지부를 통해 자살처방을 구하는 방법을 문의했고 전화를 통해 아트로트회장으로부터 직접 『약은 우리가 마련해 줄 수 있으나 값은 비싸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빌마부인은 협회측이 물론 자살을 하려는 이유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빌마부인은 아트로트회장의 지시대로 3백마르크(약 15만원)를 지정한 계좌로 송금했고 역시 우편으로 「죽음의 칵테일」을 수령했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나바킨 1백정은 프랑스에서 의사의 처방 없이 8.5마르크 정도의 값으로 구입 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아트로트회장은 30배 이상의 이문을 남긴 셈이다.
빌마부인은 최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죽음의 칵테일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듣고 이를 모두 버렸다고 하지만 이미 베를린에서도 지난 4월 81세의 동독 출신 노부인이 유사한 처방의 약제를 5백마르크에 구입,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베를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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