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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친구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요즘 아이들은 저밖에 모른다』는 등 최근 「요즘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걱정과 비판의 소리가 높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에 귀기울이는 어른들이 적다는 것이 불만이다. 아이들의 고민과 문제를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고 전문가들과 함께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분석, 해결책을 찾아보는 시리즈 「아이들 세계」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자기 생일이나 놀이에 나를 초대해주는 친구가 좋아요.』
『나에게 선물을 사주거나 도움을 주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지난 16일 서울S국민학교 6학년1반에서 벌어진 「친구」라는 주제의 자유토론에서 학생들은 「내가 가장 사귀고 싶은 친구는 나에게 잘하는 친구」라고 결론지었다. 이어 담임교사는 『그럼 자신은 과연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저는 친구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생일에 초대하면 꼭 기억했다가 내 생일에도 초대하거나 답례합니다.』
이 반에서 모범생으로 소문난 김모군(13)의 대답이다.
『3년 넘게 사귀어온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
『자기 고민이나 집안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있는 사람은 손들어봐요.』 52명 중 6명이 손을 들었다.
일선교사들은 「요즘 아이들의 친구 사귀기 풍속」을 단적으로 「계산적」 「자기중심적」 「인스턴트적」이라고 표현한다. 서울사대부국 최여규 교사(41)는 『요즘 지난 4월말 서울 M국교 5학년생인 김모양(12)은 집에서 50만원을 훔쳐 친구들에게 돈을 주거나 먹을 것을 사주다가 부모에게 들켜 학교도 가지 못하는 등의 심한 벌을 받고 어린이걱정상담실을 운영하는 서울장위국민학교 차원재 교장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넉넉한 집안의 외동딸인 김양은 반친구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아 친구가 없다고 외로움을 호소하며 『돈이 많아야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차 교장은 『상담사례 중 절반이상이 친구가 없어 외롭다거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외면한다는 등 친구 사귐과 관계된 문제인데 최근 들어 두드러진 현상은 물질을 제공해야 친구가 생긴다고 믿는 어린이들도 늘고 있다』며 『어린이들은 친구가 필요하지만 사귀는 방법을 몰라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모군(13·서울G국교6)은 친구들끼리 서로 좋은 얘기는 하지 않고 고민을 얘기하면 TV코미디식 우스개로 넘기거나 『못생기면 다냐』는 등 서로에게 흠집 내는 이야기만 골라해 진지하게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장모군(12·서울G국교5)은 『얼마 전 학교에서 협동숙제를 내줘 친구집에서 함께 숙제하느라 집에 전화하고 늦게 들어갔는데 엄마가 친구는 공부를 잘하느냐, 아버지는 뭐 하느냐고 꼬치꼬치 묻고 세상이 험하니 일찍다녀라, 친구 잘못 사귀면 큰일난다며 걱정해 친구들과 오래 놀려고 해도 불안해 놀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G국교 김모 교사(32)는 요즘 아이들이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주요 이유를 이 같은 「가정교육탓」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어쩌다 아이를 야단이라도 치면 당장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왜 아이의 기를 죽이느냐」며 항의하기일쑤예요. 이런저런 점을 고쳐야 한다고 하면 「크면 다 알아서 한다」고 말해요.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자기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돼 밖에서도 자기를 떠받들어줄 것을 기대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상심하게 되죠.』
김재은 교수(이대교육심리학과)는 『친구와 즐겁고 친밀하게 놀 줄 아는 사람만이 어른이 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친구 사귀는데 소홀히 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사대부국 최여규 교사는 『어린이들은 저희들끼리 부닥쳐 싸우고, 좌절하고, 화해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좋은 친구로 발전할 수 있다』며 『부모·교사들은 학교·가정 등에서 그런 기회를 빼앗지 말고 적극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양선희 기자>
『아이들 세계』 시리즈는 ▲김재은(이화여대교육심리학과교수) ▲김태연(동) ▲이귀윤(이화여대교육학과교수·이대부국교장) ▲이용숙(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 ▲이재분(교육개발원 연구원) ▲정소영(전주기전여자전문대강사) ▲차원재(장위국민학교교장·어린이걱정상담실 운영) ▲전하찬(서울 반원국교교장) ▲백의빈(서울 문성국민학교교감) ▲최여규(서울사대부국교사) 선생님 등 교육관계자 여러분들의 도움말과 서울시내 국민학교 4, 5, 6학년에 재학중인 어린이 30명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꾸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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