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다시 기형도의 시집을 읽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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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강경호(1956~) <다시 기형도의 시집을 읽다가>부분

행간에 납작해진 하루살이 한 마리/시의 활자가 되었다/시의 의미를 따라가다가/
고딕도 명조도 아닌 것이/눌러 붙은 곳에 이르러/갑자기 시의 흐름이 끊겼다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시집을 무덤으로 삼은/하루살이를 생각하다가/오랫동안 쓸만한 시 하나 쓰지 못하는/허명의 시인을 생각하다가/하필 요절한 기형도의 시집 속에서/온몸으로 암호가 되어버린 하루살이

-이하 생략-



요절 시인의 시집 어느 페이지가 하루살이의 무덤이 되었을까. 단명한 시인의 목소리가 배어나오는 어느 시구에 귀묻고 하루살이는 행복하게 묻혔을까. 눌려 죽은 그 몸을 언어로 대구를 맞췄을까, 온몸을 암호로 시가 된 하루살이라니, 기막힌 상상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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