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 부실수사와 은폐 의혹 걷어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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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술집종업원 보복 폭행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태도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사회지도층 연루 사건에서 빠지지 않는 경찰의 몸 사리기와 봐주기 수사 등 고질적 병폐를 또 한 차례 드러낸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당일인 3월 9일 "S클럽에서 손님이 종업원을 심하게 폭행했으며 가해자가 한화그룹 회장 아들"이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신고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철수했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3월 20일쯤 첩보를 통해 사건을 인지했다"고 밝혔지만 이것도 거짓이었다. "사건 다음 날 경찰관 한 명이 술집 주변에서 탐문 수사를 벌였으며 그 경찰관은 전날 김 회장이 클럽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증언이다. 설령 경찰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한 달 동안이나 '내사'만 벌였다는 점을 볼 때 경찰이 사건을 덮어두려 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사건 발생 2, 3일 뒤 한화그룹의 고문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에게 직접 전화해 사건에 대해 물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실 수사는 더욱 가관이다. 24일 사건이 보도된 뒤 장 서장은 "김 회장과 아들이 모두 미국에 나가 있어 조사는 5월 말에나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미 귀국해 있었고 아들은 올 초부터 교환학생으로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아들이 25일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을 놓고도 장 서장은 "한화 측이 서울에 있다고 거짓말했다"고 하더니 출국을 미리 알린 사실이 확인되자 "수사과장이 보고를 안 했다"고 발뺌하는 데 급급했다.

이러고서야 어찌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어디서 경찰 수사권 독립이라는 말이 먹힐 수 있겠나 싶다. 김 회장이 폭행에 직접 가담했는지 등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부지기수다. 경찰은 은폐 의혹에 대한 솔직한 해명과 함께 그간의 부실 수사를 속죄하는 심정으로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