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없는 「반민자」 시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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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신세계백화점앞 로터리에서는 학생·재야인사 등 2만여명이 「반민자당」 시위에 나서 경찰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어느 시위때와 마찬가지로 수천발의 최루탄이 안개처럼 깔리고 돌멩이가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었지만 특이한 것은 화염병이 단 한개도 보이지 않은 점.
시위대는 롯데백화점앞을 거쳐 종로3가까지 도심을 가득 메운채 가두행진을 벌였고 도로를 점거,밤늦게까지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를 계속했지만 신기하게도 학생시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화염병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려한다』『자살특공대까지 만들었다더라』며 잔뜩 긴장하던 경찰이 오히려 『학생들이 웬일이지』 하며 머쓱한 표정이었다. 달라진 것은 학생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시위 진압에는 하얀 파이버를 뒤집어쓰고 일반시민들에게까지 거친 욕설과 행동을 일삼아 공포·비난의 대상이 되던 사복체포조(백골단)가 동원되지 않았다.
2만여명이 넘는 시위대가 모였는데도 시위가 끝날 때까지 연행·구속자가 단 한명도 없었던 기현상은 시위를 막는다고 길가던 젊은이는 무조건 경찰서로 끌고가던 과거와는 격세지감을 갖게 했다.
경찰은 그대신 구경하던 시민들에게 『학생들의 불법시위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경찰은 시위대를 빨리 해산시켜 질서를 회복하겠습니다. 피해를 보지않도록 조심하십시오』라며 대형 마이크로 선무방송을 하는 고단수(?)를 보였다.
19일의 시위는 시민들이 모두 대피해버린 텅빈 도심에서 쇠파이프를 든 백골단·학생들만이 남아 난투극을 벌이고 화염병이 불바다를 이루던 지난해까지의 「전쟁」을 돌이켜보면 한결 개선된 시위형태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국가를 상징하고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 선출을 위해 집권당이 후보를 뽑는데 왜 이같은 대규모 시위가 계속돼야 하는지 정치인들이 먼저 각성하지 않는다면 시위는 언제든지 다시 「전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섰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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