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세습 차단」 원칙만 제시/가닥잡기 힘겨운 「신산업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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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력업종제도 재무­상공부 이견여전/「경제민주화」 맞물려 재계불안감 고조
정부 고위층의 잇따른 해명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재벌규제조치를 지칭하는 이른바 「신산업정책」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최각규부총리와 한봉수상공부장관 등이 나서 『재벌에 대한 인위적인 규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대기업그룹에 대한 규제의 개연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14일만 해도 한 장관이 한국인간개발연구원의 초청강연을 통해 정부의 산업정책 방향을 밝히고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은행감독원은 현대를 비롯한 10대그룹의 사주나 가족들이 회사로부터 가지급금을 받을수 없도록 하고 기존의 가지급금도 늦어도 다음달까지 회수토록 함으로써 규제성 분위기를 형성했다.
정부는 새로운 규제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기업 그룹의 행태를 현재 상태로 끌고 갈수는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개선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그 대책의 내용은 물론 방향이 정부내부에서 조차 가시화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올 가을께면 다소 가닥이 잡혀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까지 파악되는 정부검토 대재벌정책은 세가지의 큰 줄기로 나눠진다.
첫째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문제다.
정부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초법적인 수단을 통해 달성할 뜻을 갖고 있지 않으나 기존의 법 울타리안에서 증여세·상속세 개선과 엄정한 집행을 통해 재벌기업이 3∼4대에 걸쳐 물려지는 것을 막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두번째는 재벌기업의 계열사끼리 주고받는 상호지급보증의 폐지문제.
이는 경제기획원이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를 맡긴 8대과제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계열사 출자한도를 대폭 줄이고 상호 지급보증을 동결하자는 의견과 주력업종의 육성을 위해 비주력기업이 주력기업에 지급보증을 하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정부내에 맞서있다.
세번째가 주력업종의 육성방안이다.
업계의 사정을 비교적 이해하는 입장에 있는 상공부와 청와대 경제팀이 현재 업체중심으로 돼있는 주력업종제도를 업종중심으로 바꾸는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주무부처인 재무부는 업종중심으로 바꿀 경우 재벌기업의 계열사들이 거의 대부분 여신관리에서 제외된다는 점 등을 들어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들 세줄기의 대재벌정책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완화문제가 워낙 민감한 사안인데다 과거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해온 재벌기업의 입장에서는 상호지급보증의 폐지 등이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의 대재벌정책은 6공이후 전반적인 정치·사회의 민주화 흐름에다 경제민주화요구가 맞물려 발동이 걸렸지만 아직 「이거다」하고 내놓을 만큼 확실한 틀이 짜여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경제력집중 완화문제만 하더라도 경제기획원의 경우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부의 세습차단에 비중을 두는데 비해 상공부는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조직의 개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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