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호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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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15해방직후 한동안 한국사람들 사이에서는 「미국사람 믿지 말고 소련사람에 속지말라」는 말이 나돌았었다. 일제의 혹독한 폭압정치로부터 벗어난 기쁨도 기쁨이지만 또 다른 외세로부터 다른 형태의 지배를 받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같은 말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외세로부터의 잦은 침략과 억압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외국사람들을 싫어하고 경원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까닭이겠지만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부르는 호칭은 모두가 외국인을 천시하고 멸시하는 것들 뿐이다. 가령 일본사람들은 「왜놈」이라 하여 작은 것을 조롱했고,중국사람들은 「되놈」이라 하여 야만인으로 비하했다. 뿐만 아니라 서양사람들조차 「양이」라 하여 서양의 오랑캐에 비유했으니 한국사람의 외국사람에 대한 기본적 시각과 태도를 쉽사리 엿볼 수 있다.
1653년(효종 4년)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 앞바다에 상륙,13년여동안 이땅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네덜란드인 하멜의 『표류기』를 보면 서양과는 구체적 접촉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한국인들이 노랑머리·푸른 눈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본질적으로 사대주의적 체질에 배어있다고 보는 일본인학자들이 있어 우리를 분노케 한 적도 있다. 예컨대 「한국은 중국의 지에 배우고,북방의 의에 복종하고,최후로 일본의 정에 안기어서,여기서 처음으로 반도사적인 것을 지양할 때를 얻은 것이다(삼품창영·『조선사개설』)」 따위의 시각이 그것이다. 침략자가 피침략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대표적 억지의 논리지만 일본인들의 한국·한국인에 대한 그같은 시각탓에 한국인들은 본질적으로 일본인들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모양이다.
최근 서울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실시한 외국인 선호도조사를 보면 성인이고 학생이고 간에 모두가 일본인들을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걸보면 국민적 감정은 그리 단순치 않은 것 같다. 흑인들도 일본다음으로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일본인이고 흑인이고 한국인의 그런 감정을 한번쯤 되새겨 볼만하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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