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무원 '낙하산 취업' 된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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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산하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에 손쉽게 들어가던 일본 공무원들이 된서리를 맞게 됐다.

일본 정부는 24일 임시 각료회의를 열고 각 정부 부처가 공무원들의 '낙하산 취업'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부조리의 온상으로 불리던 정부 부처와 공기업 간의 불투명한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한 획기적 조치로 평가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이번 공무원 제도의 개혁은 실로 60년 만의 대개혁"이라며 "이 개혁에 의해 (관민 사이의) 담합이 근절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안의 핵심은 한국으로 따지면 총리실에 해당하는 내각부 산하에 '관민 인재 교류센터(신 인재뱅크)' 라는 조직을 늦어도 내년까지 신설, 퇴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재취업 알선 업무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부처별로 퇴직한 공무원이 산하 공기업이나 관련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었다. 한마디로 각 정부 부처가 사실상 자기 부처 공무원의 재취업을 알선하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성을 물러난 공무원은 자연스럽게 도로공사나 관련 회사의 임직원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재취업을 희망하는 공무원은 '관민 인재 교류센터'에 자신의 이력 등 개인정보를 등록해 취업 알선을 의뢰하게 된다.

이를 접수한 센터에서는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의 구인정보를 취합, 취업 희망자와 구인 희망 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센터에 파견되는 각 부처 공무원들은 자신이 속한 부처 소속 공무원의 재취업엔 일절 관여하지 못한다.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했다.

'낙하산 취업'의 길이 좁아진 일본 공무원 사회는 "관료사회의 사기 저하로 이어진다"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아베 총리의 인기몰이 전술"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관민 인재 교류센터'의 구성을 둘러싼 세부 사안들이 결정되는 올 하반기에 공무원들의 강한 압력이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대두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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