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우물 밖이 두려운 프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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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투표가 끝난 22일 밤 1위를 차지한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는 힘찬 목소리로 대국민 감사 연설을 했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연설이 끝나갈 무렵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는 "국민을 폭력.범죄와 함께 '기업 해외 이전'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화에 따른 자국 내 일자리 감소를 염두에 둔 말이겠지만, 사기업이 생존이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걸 집권당 대통령 후보가 폭력.범죄와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사르코지와 함께 결선에 진출한 좌파의 세골렌 루아얄은 한술 더 떠 "세계화의 물결에서 국민을 구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유력 대통령 후보들이 세계화에 이토록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나라가 과연 프랑스말고 또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주 프랑스의 MEDEF(전경련에 해당)의 로랑스 파리조 회장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파리조 회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주의나 세계화를 제대로 아는 대통령 후보가 한 사람도 없다"며 "대선 후보들이 유럽에서의 프랑스, 세계에서의 프랑스 위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제 뉴스를 볼 때도 프랑스의 독특한 민족주의가 자주 느껴진다. 얼마전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자국 내 매출이 지난 10년 만에 최악이라는 뉴스를 보면서였다.

앵커는 "프랑스 시장에서 자국산 자동차의 점유율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강조했으며, 방송은 "이러다가 프랑스 차의 국내 점유율이 50% 밑으로 떨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 전했다. 보도인지 국산차 애용 계도방송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프랑스 대외무역담당부가 외부 연구소에 위탁해 만든 보고서는 이런 프랑스의 반세계화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난주 공개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세계화를 '일자리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는 정도가 유럽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강했다. 반대로 세계화를 '개인 발전의 기회'로 보는 사람의 비율은 가장 적었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는 세계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두려움'을 떠올리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일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느 나라도 세계화라는 도도한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를 애써 부인하려 든다. 이 나라의 농민 조제 보베는 1999년 세계화의 상징이라며 맥도널드 햄버거 공사현장을 트랙터로 때려 부쉈다. 그는 이번 대선에 출마해 1.32% 득표에 그쳤지만 그의 반세계화 주장은 1, 2위 후보들도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프랑스인들은 이번 선거에서 '강한 프랑스'를 외치며 대거 투표장으로 향했다. 그래서 33년 만에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우물 안에서 바깥 세상을 거부하며 '프랑스 만세'만을 외치는 외곬 방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강한 프랑스'를 만들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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