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회담에 거는 기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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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되고 비핵화 공동선언이 있은후 처음으로 남북고위급 회담이 5일부터 서울에서 열린다. 남북합의서 채택이 일반의 예상보다 빨리 극적으로 이루어졌던 감개와는 달리 그 이후의 실무접촉 과정을 보면 대화는 있었으나 합의는 별로 없는 답보상태가 지속돼 왔다. 때문에 이번 제7차 고위급회담에 대한 민족성원들의 기대는 그만큼 더 절실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월19일의 기본합의서 발효이후 남북한은 합의서 규정에 따라 핵통제공동위와 정치·경제·교류협력분과위 등 4개 위원회를 발족시켜 14차례의 접촉을 가졌다. 그러나 기본합의서 등의 이행을 위한 세부사항을 둘러싸고 남북간 기본입장의 차이와 내부사정 등이 얽혀 실질적인 합의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우리측은 사안에 따라 실현가능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실시해 나가자는 「개별적 점진주의」 원칙하에 사항별 부속합의서 작성을 제의,10개의 부속합의서안과 5개의 공동실무위 구성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일괄합의,동시실천」 원칙하에 정치·군사·교류협력에서 각각 포괄적인 단일 부속합의서 작성과 4개 공동위 설치안을 들고 나왔다.
더구나 남북대화 전반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칠 북한의 핵사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다 북측이 합의서채택 당시 유보했던 주한 미군철수와 우리의 보안법폐지를 단일 부속합의서에 포함시키자고 나서 대화가 오히려 후퇴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또 북한은 금년에 다시 군중대회형식의 「8·15범민족대회」를 추진하면서 남한의 반체제세력을 선동하고 있다. 북한이 이런 내정간섭적인 행동을 버리고 교류와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회담자세를 성숙시키지 않는 한 남북대화의 진척은 어렵다.
북한의 「일괄합의,동시실천」은 이것이 안되면 저것도 할 수 없다는 연계방식이어서 당장 실현가능하고 남북에 모두 유익한 일마저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남북교류협력의 증진은 7천만 우리 민족 전체의 이익일 뿐만 아니라 어려운 북한의 경제사정 개선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부질없는 언사와 까다로운 절차에 얽매이지 말고 쉬운 것부터 하나 하나 해결을 축적해 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고위급회담을 진행하면서 양측 정상이 상대방 수석대표를 접견한 사례가 네번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의례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이를 정례화·실질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다. 간접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격을 띠게 될 이런 접촉은 정상회담이 어려운 상태에선 남북대화에 유익한 장치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7차 고위급회담이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대화에 새로운 돌파구 마련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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