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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통일비용이 “화근”/파업·겐셔 사임… 흔들리는 독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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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듭되는 증세에 등돌리는 민심/외무후임 지명싸고 여 내분 가열
지난 54년이후 최대 규모로 일컬어지는 독일공공기관노조의 파업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의 사임으로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헬무트 콜 총리의 독일 기민(기사당포함)·자민 연정이 집권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연정붕괴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같은 위기의 본질은 한마디로 동서독통일후유증으로 집약할 수 있다.
90년 당시 국내외 여건의 호기를 이용,독일정부가 서둘러 통일을 달성했지만 「졸속통일」에 대한 대가를 뒤늦게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통일,즉 구동독을 구서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는 1조마르크(한화 약4백70조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예산(92년)의 14년치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금년 연말까지 6천5백억마르크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천문학적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독일정부가 이같은 비용을 염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희생,즉 세금인상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독일정부는 지난해 유류와 담배 등의 세금을 인상했고 지난 2월엔 정부의 의도대로 93년부터 부가가치세를 14%에서 15%로 인상하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이 연방상원을 최종 통과했다.
문제는 이같은 정부의 정책이 국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직전인 90년 9월의 여론조사에서 이미 구서독 국민의 30%가 증세등을 이유로 통일에 반대했던 「합리적인」 이들에게 「형제애」「국가백년대계」를 내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의 설득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파업중인 공공기관 노조는 물론 29일 경고파업에 돌입한 금속노조등 대부분의 노조가 9∼10%대의 임금인상을 요구,3%대를 제시하고 있는 정부 및 사용자측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통일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시각이 정부측과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이처럼 집권여당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겐셔외무장관의 사임발표는 콜총리 정권을 더욱 궁지에 몰아 넣고 있다.
우선 겐셔장관의 후임자문제로 기사·민자당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테오 바이겔재무장관(기사당총재)이 외무장관직이 자민당지분이 돼서는 안된다고 공격하자 자민당지도부는 27일 서둘러 이름가르트 슈베처건설장관(여)을 겐셔의 후임에 임명했다.
이에 대해 이번엔 자민당에서 내분이 일어나 28일 의원총회에서 클라우스 킹켈법무장관으로 후임자가 바뀌었고 이 과정에서 당 수뇌부에 대한 사퇴압력이 일고있다.
외무장관이 계속 자민당 몫으로 남게되자 바이겔재무장관은 『연정의 존립이 의문시 된다』며 민자당은 물론,콜총리를 강력 비난했다. 그러나 29일 이번엔 안팎으로 몰린 오토그라프 람스도르프자민당총재가 『현재의 연정이 계속될지 의문이다. 문제 해결에 사민당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연정탈퇴를 강력 시사하는 맞불작전으로 나왔다. 겐셔의 후임으로 부총리가 된 위르겐 묄레만경제장관도 29일 바이겔재무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그의 실정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서 반격을 개시,연정의 내분이 극에 달한 상태가 됐다.
집권여당의 이러한 내분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리는 없는 사민당쪽에서는 의회해산 및 총선실시주장을 펴고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민당의 「희망사항」일뿐 아직 정치권이나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콜총리가 현재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는 길은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임금협상을 타결,노조의 파업을 종식시킴과 동시에 과감한 개각으로 연정의 내분을 잠재우는데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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