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김성근 구단 바꿔 맡는 "질긴 인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정동진(46)과 김성근(50).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한국 아마야구대표팀포수·투수로 배터리를 이루기도 했던 두 감독의 엎치락뒤치락하는 프로에서의 여정이 흥미롭다.
특히 지난해 정 감독이 태평양사령탑에 취임하면서 두 감독은 각각 구단을 바꿔 맡게되는 묘한 인연을 맺게됐다.
정 감독은 지난 90년 삼성감독을 처음 맡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까지 오르는 능력(?)을 발휘했으나 결국 고향 팀인 삼성을 떠나 방황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또 김 감독도 그해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둔 상황에서 태평양구단으로부터 강제로 밀려나 프로에 참여한 이후 처음 실직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때 삼성은 승부사로서의 경력이 앞서는 김 감독을 영입했고 정 감독은 선배로부터 떼 밀리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올해 태평양 팀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정 감독은 때마침 역대 최강의 전력을 갖추게 돼 승승장구, 태풍의 주역이 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반면 김 감독은 지난해 4위에 이어 올해도 아직 초반이지만 우승권에 진입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등 고전중이다.
정 감독은 휘하에 아마최고 투수이던 정민태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 등 막강한 투수진을 거느린 데다 LG로부터 김재박을 얻는 행운까지 겹쳐 지난날의 서러움을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씻고있다.
그러나 과거 만년꼴찌이던 태평양을 4강 대열에까지 끌어올린 승부사 김 감독은 허약한 투수진을 이끌고 4위 권 고수에도 애를 먹고있는 실정이다.
삼성은 믿었던 성준 유명선 등이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고 8천만 원 짜리 좌완 김태한도 컨트롤 난조로 중간계투 요원으로 전락하는 등 투수진이 무너진 상태.
공격도 2할5푼 대의 팀타율(4위 권)로 마운드의 불안을 커버할 정도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팀타율 2할3푼8리로 공격력에 문제를 보였던 태평양은 타자들을 믿고 맡기는 정 감독의 용병스타일이 들어맞아 타율 2할7푼5리로 껑충 뛰어오르며 승승장구, 화려한 타선을 믿지 못하는 김 감독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냉엄한 프로세계에서 상대방의 자리(?)를 빼앗은 묘한 인연으로 얽힌 두 감독은 올 시즌 두 번 격돌, 정 감독이 연승을 거두고있다.
태평양을 이끌며 명감독이라는 칭찬을 받던 김 감독이 삼성을 맡으면서 기억 속에 사라져 가는 대신 삼성에서 태평양으로 옮기면서 빛을 발하는 정 감독.
결국 명감독은 선수가 만드는 것이라는 프로세계의 진리가 그대로 들어맞는 것 같다.<권오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