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때 외아들 잃은 다섯 할머니/봉투접어 장학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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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자랑스런 아들” 친자매처럼 32년/「그날」이면 한자리에 모여 뜻기려
서른두번째 4·19를 하루앞둔 18일 오후 1시,서울 수유동 4·19공원묘지 관리실에 모두 70고개를 훨씬 넘은 다섯 할머니가 소복차림으로 찾아들었다.
『또 만났네 그려』 『그새 안녕들 하셨구랴』 『어서 오시라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며 손을 맞잡는 얼굴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의 자취가 역력했다. 32년전 그날,참으로 기이한 인연으로 모두가 외아들을 잃고 남편마저 일찍 여읜뒤 여자 혼자의 힘으로 세파를 헤쳐 오늘에 이른 「역사의 어머니들」.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아들들의 육신을 이곳 묘지에 누인 인연으로 만나 32년째 외로움을 달래고 아픔을 나누면서 피를 나눈 동기보다 더한 정으로 「자매」가 됐다.
4·19 32주년에 처음 밝혀진 기연의 주인공들은 김정연(76·전북 무주)·이계단(83·충남 청양)·이춘난(75·서울 구기동)·도필종(76·서울 신사동)·김월선(78·서울 남가좌동) 다섯 할머니.
이계단 할머니는 『한날 한시에 아들들의 피로 맺어진 인연이라 끊어지질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떨어져 살면서도 수시로 연락을 나누고 가끔씩 유족회 사무실 등에서 만나곤 한다. 그중에도 아들들의 추모제사가 치러지는 4월18일은 지방에 사는 할머니 2명이 함께 올라와 5명이 모두 모이는 날이다.
아들들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날이다.
4·19당시 경희대 법대에 다니던 외아들(당시 24세)을 잃은 김정연 할머니는 『처음에는 어미를 놔두고 훌쩍 떠나버린 아들에 대해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온통 그리움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이 태어난지 80일만에 남편을 여의고 24년동안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키워온 아들마저 4·19로 잃은 이계단 할머니는 요즘도 밤마다 봉투를 접는다.
『아들이 죽고 난후 아들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봉투를 접기 시작한지가 벌써 32년이 됐어….』
이할머니는 정부에서 주는 돈과 봉투를 접어 모은 돈 1천만원으로 장학기금을 만들어 할머니가 살고 있는 충남 청양의 불우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푸른 청산 무덤속에 묻은 슬픈 네 음성/이 어미들의 가슴에 사무치는구나/4·19어미들의 아프고 아픈 마음 어이할지 어이할지.』
봉투를 접으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지었다는 자작시를 이날도 아들의 영전앞에서 노랫가락처럼 외다 오열하자 『아,아들은 당신만 잃었어. 웬 청승이야. 가슴 아프게….』 핀잔을 주던 다른 할머니들의 눈자위도 그만 붉어졌다.
그러나 잠시후 슬픔을 추스린 이할머니는 『나라에 바친 우리 아들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열사의 어머니들 아닙니까』라고 했다.
한달 30만원의 유족연금으로 외롭게,그러나 의연하게 살아가는 「4월의 할머니」들. 그 작은 어깨너머로 젊은 대학생들이 부르는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노랫소리가 들렸다.<유광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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