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갈등 소설로 화해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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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의 현대사 및 개인적 삶에 엄청난 상처를 안기고있는 좌우의 이념갈등을 풀고 화해를 모색하는 소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최근 이청준씨는 단편 『가해자의 얼굴』, 이문열씨는 단편『시인과 도둑』, 이청해 씨는 중편『머나먼 광주』를 통해 이념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80년대 참여문학 진영으로부터 자유주의·보수주의작가로 불리던 이청준·이문열 씨 등이 이제 이념문제를 직접 들고 나와 주목된다.
곧 나올 『월간중앙』 5월 호에 실린『가해자의 얼굴』은 중학생 때 6·25를 격은 아버지와 대학생 딸간의 토론을 통해 화합, 나아가 통일의 방안을 다루고 있다.
운동권 여대생인 딸은 남북이 서로 수난자의 자리에서 상대방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 독재권력으로부터의 기본생존권과 인간성말살 현상 등이 외세에 의해 좌우익이나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민족의 동질성인 수난자의식으로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버지는 남북, 좌우익이 서로 가해자 의식을 갖고 만나야 억압과 수난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난자로서 과도한 자위권과 반격 권을 누리면 어느덧 가해자로 변모하려는 순환이 되풀이되니 자기 속죄의식을 덕목으로 하는 가해자 입장에서 만나야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머나먼 광주』(민족과 문학봄호)는 한 중년남자의 고향 찾기를 통해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 작품.
일제하 독립운동과 해방정국에서의 공산당운동을 한 아버지의 전력 때문에 혹 피해를 볼까 호적을 허위 기재한 주인공이 자신의 고향인 광주를 찾는 여정을 통해6·25 ,4·19, 그리고 광주민주화 항쟁 등 현대사의 상처를 드러낸다.
그러나 『같은 하늘을 이고 몇십 년의 시차로 우리는 이 나라를 살았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다르지 않듯, 데모하는 학생들과 전투 경찰이 다르지 않듯, 옛날의 빨치산과 군경도 무에 다르랴 싶었다. 그것을 모두 다 포용하고 받아들일 때가 된 것만 같았다』란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이청해 씨도 이념을 무화시키며 화해를 찾고 있다.
한편 이문열씨는 『시인과 도둑』(현대문학 4월 호)에서 민중이념·민중문학에의 지나친 편향을 경계하고 있어 주목된다.
혁명을 꿈꾸는 산적에 잡혀간 시인은 투정시·노동시 등을 지어 민중에 유포시킨다. 처음엔 그러한 시로 혁명이 고무되는 기운을 보였으나 이내 지배계층이 그러한 계급대결에 대비, 경계함으로써 결국 혁명은 실패한다는 이야기다.
이같이 80년대 이념을 다루지 않았던 작가들이 이제 그것을 직접 다루며 화해를 모색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감돌고 있는 통일여망과 무관하지 않다.
이청준씨는 『이제 작가는 통일을 위해 써야할 것과 쓰지 말아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따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며 『통일이란 큰 문제를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소설도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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