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인물 왜 출연시키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일본 등 외국방송에서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사람의 방송출연 규제가 무척 강하다. 방송의 공공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굳이 나라 바깥의 예를 조목조목 들지 않더라도 방송의 공공성 유지여부는 국내에서도 늘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그런데 며칠전 시청자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듣기 좋지 않은 일로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연이어서 TV화면에 얼굴을 내민 것이다.
MBC-TV는 변호사 박경재 씨에게 12일『MBC와 만납시다-김현희 편』에 이어14일 『안두희 입을 열다』를 진행케 했다. 이에 앞서 11일에는 같은 방송사의 오락프로『특종 TV연예』에 가수 이승철씨가 출연했다.
한 사람은 얼마 전 사회적 물의를 빚은 스캔들로 방송 현장을 떠났다. 그 뒤 다시 진행을 맡아 방송활동 재개를 꾀하다 주위의 반발로 도중 하차했던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대마초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국내에선 마약으로 통하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물의를 빚으며 세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이 두 사람의 능력과 자질이 어떻다는 얘기가 아니다. 방송의 공익성 등을 놓고 곰곰이 생각할 때 이들의 TV등장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상으로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흔한 말로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의 얼굴을 TV에서 다시 접할 때 느끼는 시청자들의 당혹스러움은 크다. 『저 사람이 왜 또 나오느냐』는 식의 거부 반응이랄 수 있다. 사회적인 물의를 빚고도 버젓이 TV에 출연하는 것을 보고 자라나는 세대들은 또 어떻게 느낄 것인가. 과연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다.
방송사 측은 이렇게 대꾸할지 모른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않냐고. 또 이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그리 흔치않다고. 덧붙여 한때 인기절정의 가수가 지금은 뭘 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도 방송이 할 일 중의 하나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청률을 의식, 일단 시선을 끌고 보자는 시각이 담겨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공교롭게 이들 프로그램이 봄철 프로개편과 함께 첫선을 보였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방송의 공공성·공익성이야 어찌됐든 신경 쓸 바 없이 시청률 우선 주의에 매달리고 보자는 식의 방송사 측 태도가 놀랍다.<김기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