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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는 리모델링 중] 6·끝. 미국 보스턴·프로비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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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지에서 서울을 돌아보게 한 재개발 현장 두 군데.

<#1>도심을 가로지른 6차로 고가도로 위에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하루 평균 20만대가 지나면서 툭하면 정체를 빚는다. 만든 지 40년이 넘어 삭아버린 몸체는 수시로 콘크리트 조각을 흘린다. 설계부터 잘못된 진출입로에선 교통 사고율이 엄청 높다. 철거하지 않을 수 없는 시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의 도심을 지나는 고가도로 이야기다.

<#2>강 한가운데를 곤돌라가 미끄러진다. 수면 위 여기저기 화로 모양의 조각물인 '워터파이어(waterfire)'가 비죽 올라와 있다. 속엔 나뭇단이 들어 있다. 곤돌라에 탄 사람이 차례차례 불을 붙인다. 싱싱한 나무가 타는 향긋한 냄새가 바로크 음악에 실려 퍼진다. 물가의 시민과 관광객들은 조용한 탄성을 토한다. 로드 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시의 도심 하천. 복개됐던 것을 열어 되살리면서 운치를 한껏 더한 모습이다.

◆그린 몬스터와 빅 디그=문제의 보스턴 고가도로는 미국 동부를 세로로 달리는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州間 고속도로) I-93과 대륙 횡단 도로 I-90의 한 구간이다. 1959년 개통했으며 높이 12m에 너비 60m, 왕복 6차로다. 녹색을 칠한 철재와 콘크리트로 돼 있어 '그린 몬스터(녹색 괴물)'라 불린다.

보스턴 도심을 양분해 해안 쪽으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이탈리아계가 많은 노스 엔드 지역과 중국인 거리를 지나면서 생활 환경을 파괴하는 바람에 건설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안전 규정을 강화한 연방고속도로법이 제정되기 전 것이어서 교통 사고율이 미국 도시고속도로 평균의 네 배를 넘는다.

이 도로를 내년 초에 철거한다. 바로 밑 지하엔 왕복 8차로의 고속도로가 이미 완공돼 있다. 북쪽으로 가는 차로는 지난 3월 개통했으며 12월 말 남향 차로가 트인다. 그때까지 고가도로를 사용한다.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10여년 동안 고속도로 지하화 작업을 해왔다. 여기에 보스턴 항구 앞 해저 터널 굴착, 부근 스펙터클 섬의 공원화, 찰스 강의 새 다리 건설 등을 더한 게 이른바 '보스턴 빅 디그(Big Dig)'사업이다. 공식 명칭은 센트럴 아터리/터널(artery/tunnel) 프로젝트. 투입한 경비가 연방 보조금을 포함해 1백50억달러(약 18조원)나 된다.

공중 철거와 땅속 건설을 마치면 고가도로에 가려 시들었던 지상(地上)을 살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3억달러를 써 3만7천평의 푸른 띠, 로즈 케네디 그린웨이를 조성한다. 75%를 공원과 광장으로 만들고 나머지 지역에 문화.상업 시설을 배치할 예정이다. 그린웨이는 주정부 청사가 있는 시 중심가와 워터프런트 지역을 바로 잇게 된다.

보스턴 재개발국의 레베카 반스 도시계획국장은 "6㎞ 길이의 띠 모양 공원이 도심을 두르면 보스턴이 새롭게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린웨이가 도심의 공공 공간 역할을 크게 하리라고 기대한다는 뜻이다. 빅 디그 사업은 74년 처음 입안해 우여곡절 끝에 91년 공사가 시작됐으며, 2005년에 완료할 예정이다.

◆재생한 강의 워터 파이어="프로비던스 강의 복원 결과를 보러 서울시의 이명박 시장이 지난 겨울에 다녀갔다"고 프로비던스시의 곤살로 케르보 홍보 담당관은 말했다. 복개했던 강을 되살린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듣고 갔다고 한다.

프로비던스는 미국 동부 로드아일랜드주의 주도다. 인구 17만명의 소도시. 17세기에 건설돼 19세기에는 섬유 공업을 중심으로 활기가 넘쳤으며, 20세기 초만 해도 부유한 도시에 들었다. 그러나 50년대 이후 제조업이 남부와 외국으로 빠져나가자 쇠퇴하기 시작했다.

철도가 도심을 가로지르고 강은 복개돼 주차장으로 쓰이는 등 시내 환경 또한 좋지 않아 상점들도 대거 교외로 나가 버렸다. 도로 구조가 자동차 위주여서 도심 교차로의 건널목에 '자살 로터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교통 사고가 잦았다.

시 당국은 83년 연방과 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도시 재생에 나섰다. 그 핵심이 프로비던스 강 시내 구간의 복원이었다. 약 1㎞ 중 70% 이상이 복개돼 있었다. 열려 있는 부분도 건물 뒤쪽으로 숨고 해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87년부터 복개 상판을 뜯어냈다. 강의 흐름도 일부 바꾸어 접근성을 높였다. 강변 도로를 넓히고 자동차 전용.보행자 전용 교량들을 건설해 교통 사고의 여지를 줄였다. 주변엔 약 1만3천평의 띠 모양 공원과 2.4㎞의 산책로를 만들었다. 94년 도심 한가운데 5천평의 워터플레이스 파크를 열면서 복원 사업이 마무리됐다.

복원 사업을 한 차원 높여준 것은 94년 조각가 바너비 에번스가 만든 워터파이어다. 강을 따라 두 줄로 90여개 설치했다. '물과 불의 조화'를 위한 장치다. 5월부터 10월까지 주말마다 점화한다. 장작 값은 시민과 도심 상인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시 관광 안내소에서 자원 봉사를 하는 제임스 아치(64)에 따르면 지난해 워터파이어를 보러 온 사람은 90만명이었다. 프로비던스시 도시계획국장인 토머스 댈러는 "강 복원에 6천만달러가 들었는데 주변 재개발에 10억달러가량의 민간 투자를 끌어들였으니 성과가 아주 좋은 셈"이라고 했다.

신혜경 전문기자 <도시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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