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여자축구 샛별 지소연 지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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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 2차전에서 베트남을 2-0으로 꺾고 귀국한 17일, 안종관 여자대표팀 감독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승리의 주역인 지소연(16.동산정보고)의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머뭇거리던 안 감독이 "안 하면 안 될까. 웬만하면 소연이를 그냥 놔두고 싶은데…"라고 대답하더군요.

지소연은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천재 미드필더입니다. 만 15세인 지난해 최연소 대표선수로 뽑혔고, 최연소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출전에 득점까지 기록했습니다. 팀의 막내지만, 경기를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공격형 미드필더입니다. 베트남전 두 골도 모두 그가 터뜨렸습니다.

"딱 10분만 만나겠다"며 이튿날(18일) 여자대표팀이 훈련 중인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로 찾아갔습니다. 안 감독을 만나 거절 이유를 묻자 "소연이를 제2의 (박)은선이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박은선은 한국 여자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그런데 제2의 박은선이 되는 것을 걱정하다니요.

고교 2학년이던 2003년 국가대표로 뽑힌 박은선은 성인과 청소년 대표팀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했고,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습니다. 2004년 말 대학팀이나 실업팀 모두 박은선 잡기에 나섰고, 스카우트전은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됐습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던 박은선은 실업팀(서울시청)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고교 졸업 후 2년간 대학에서 뛰어야 실업에 갈 수 있다'는 규정을 어기게 돼 징계(출전정지 2년)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4월 사면을 받아 그라운드에 돌아왔지만 이미 그는 '천덕꾸러기' 신세였습니다.

지소연은 고교 2학년입니다. 가족은 어머니, 남동생(중2)뿐이며, 집안도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팀이 그를 원합니다. 모든 상황이 박은선을 떠올리게 합니다. 안 감독의 인터뷰 거절은 그를 염려한 '배려'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지소연과 최인철 동산정보고 감독은 '대학 진학'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문초등 시절 남자축구팀에서 선수로 뛰었고, 송파의 오주중 시절 3년에 걸쳐 9개 전국대회에서 무패우승을 일궈냈던 지소연입니다. 지난해 10월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라는 수식어를 달고 무대 전면에 등장했던 그는 6개월 만에 '한국 여자축구의 현재'가 됐습니다. '현재'는 언제든 '과거'가 돼 버릴 수 있습니다. 부디 안 감독의 염려가 기우로 끝나길 바랍니다.

파주=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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