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에 바란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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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선태풍은 지나갔다. 태풍은 정계뿐 아니라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문제점과 취약점을 들추어 냈다.
여지없이 부서진 것이 있는가 하면 시급히 치유해야할 환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 상처를 고치고 새로 추스리는 일에 누가,어떻게 앞장서야할 것인가.
1차적으로 팔을 걷어붙여야 할 주체는 정부와 정당들이다. 그중에도 가장 반성을 많이 해야 하고 책임이 무거운 쪽은 정부와 여당이다. 참패의 원인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당면 국사를 처리하자면 먼저 거여의 오만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민자당은 그동안 국민을 정치혐오에 빠지게 했던 집안싸움을 빨리 정리하고 새 모습을 보여야 한다. 틈만 있으면 삐져나오는 갈등요인을 위기감과 이성으로 눌러 적어도 국정심의와 정치일정 추진에 있어서만이라도 내부합의를 이뤄야 한다. 9개월앞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나설 후보선출문제는 가급적 빨리 매듭지어지는게 중요하다.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자유경선으로 후보를 뽑아 국민앞에 새로운 집권당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노대통령은 퇴임후의 안위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선량한 조정자역할을 해야 한다.
대권희망자들도 겸허해야 한다. 국민이 심판해준 판도를 아전인수격으로 자기좋게 해석해 서로 책임이나 미루며 헐뜯어 봐야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국민의 변화 욕구를 염두에 두면서 합리적이고 세련된 타협의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지난 4년간의 실적에 대해 국민의 엄한 질책을 받았다고 해서 정부는 그러한 평가를 일거에 만회하려고 무리를 해선 안된다. 예컨대 여소야대가 불편하다 하여 공작적으로 무리하게 구도변경을 시도하지 않는게 좋다.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기등 법을 고쳐야 할때도 야당과 무소속을 진지하게 설득하는 새로운 타협과 설득의 관행을 쌓아가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있고,그들 주장대로라면 수권의 기회가 다가왔는데 종래처럼 만년 야당의 무책임한 행태에 안주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정치권이 대결위주로 시끄러우면 그렇지 않아도 활력을 잃은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내치가 시끄러운데 외교와 남북문제인들 잘 풀리겠는가. 국민이 힘을 몰아준 견제의 역할은 투쟁보다는 당면문제의 합리적 처리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신생 국민당의 등장에 우려하는 점이 있다면 혹시나 정경분리의 원칙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국민당이 기반으로 했던 특정기업군의 이익편에 서는 듯한 기미가 보이면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며,다른 기업의 불안으로 이어질 뿐이다. 중산층에 기반을 둔 국민당이 현명하게 처신하리라 기대하지만 정대표의 강한 개성이 선거의 연장선상에서 권력에 대한 한풀이로 비쳐질 가능성을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새로운 여소야대는 정치의 불확실한 요소를 크게 증폭시켰다. 정부와 여야정당이 합리적 판단과 타협의 정신을 갖지 않으면 일은 안되고,국민은 불안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국민의 새로운 시도가 또한번 정치권에 의해 실패로 끝나게 되고,그렇게 될때 여야는 엄중한 공동책임을 추궁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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