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돌풍(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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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스님 셋이서 가재를 잡으러 갔다. 통도사스님이 바위를 들고,해인사스님이 도랑을 치자,옆에 앉아있던 범어사스님이 재빨리 달려들어 가재를 모두 챙겨 넣어버렸다.
통도·해인사에서 온 두 스님은 화난 얼굴로 범어사스님을 쳐다보면서 허탈한 표정이었다.」
불교 절 집안에 흘러다니는 우화다. 영남 3대사찰 스님들의 가풍과 영악함을 비교,풍자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14대총선 결과를 이 우화에 대입해 보면­.
민자당은 바위를 들고,민주당은 도랑을 치고,국민당은 가재를 잡은 꼴이다. 통도·해인 두 사찰이 각기 불보·법보사찰로 한국불교의 오랜 전통성을 지니고 있는 명찰임은 마치 민자당과 민주당이 기존 정치판의 터줏대감인 양대정당이었다는 점과 비유될 수 있다.
또 세 스님의 가재잡이에서 역사나 지명도에서 훨씬 뒤지는 범어사스님이 가장 약삭빨랐던 것처럼 이번 총선결과도 후발의 신생 국민당이 가장 괄목할 수확을 거두었다.
국민당 바람이 불었다. 재벌당으로 정경합일을 꾀하려는게 아니냐는 비판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국민당의 돌풍은 「설마」하던 시정의 기대가 엄연한 「현실」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그 돌풍을 몰아온 힘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새로운 정치판을 갈구하는 국민의 변혁욕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특히 합당으로 거여가 된 민자당의 경제정책 실패와 정치행태 등이 준엄한 심판을 받은 셈이다.
TK의 아성인 대구에서까지 국민당 당선자가 두명이나 나왔다. 인사편중등으로 「정권독식」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점에 미루어 볼때 이같은 TK아성의 흔들림은 다시한번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참다운 도란 먼곳에 있지 않다. 바로 민심이 천심이라는 정치철학과 지도자는 공심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만 따르면 정치의 도를 손안에 쥘 수도 있으련만….<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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