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배구 꿈나무 명조련사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1970년대 한국 남자배구를 세계 4강으로 이끌었던 '명센터' 이인(李仁.51)씨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배구 꿈나무 육성에 땀을 흘리고 있다. 李씨는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1백65km 떨어진 알 아인의 스포츠클럽에서 16세 이하 배구팀과 19세 이하 팀을 지도하고 있다.

팀을 맡은 지 1년 만에 16세팀을 전국 리그 1위로 올려놓았고, 네명의 청소년 대표를 키워냈다. 키 1m90cm인 李씨는 현역 당시 세터 김호철의 빠른 토스를 받아 번개 같은 속공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쉰줄을 넘어 살짝 머리가 벗겨지고 돋보기 안경까지 썼지만 당당한 체격과 풍모는 여전했다. 리시브 훈련 때 李씨가 직접 때려주는 스파이크를 받은 선수들이 뒤로 퍽퍽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는 '부자 나라' 선수들이라 악착같은 면이 부족합디다. 또 지도자를 무시하는 등 문제가 많았죠. 이집트나 튀니지에서 온 코치들은 선수들의 비위를 맞히는 데 급급했지만 저는 강하게 조련하면서도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려고 애썼습니다."

李씨는 짧은 기간에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은 비결은 엄격한 규율과 철저한 기본기 훈련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기본기를 지도해 선수들의 실력이 늘자 신뢰가 쌓였다"고 덧붙였다. 90년부터 현대 실업배구단 감독을 맡은 李씨는 94년 갑자기 해임 통보를 받았다.

현대자동차 영업소장으로 변신한 그는 서울 강남지역 영업소를 맡아 성실함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판매 실적을 올렸다. 그렇지만 배구판을 떠나 있는 동안 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그는 중동으로 날아가 쿠웨이트와 UAE에서 국가대표와 실업팀을 지도했다.

李씨는 "최근 일부 실업팀에서 부상을 이유로 선수들을 국가대표팀에 보내주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배구 인기를 중흥시키기 위해서는 배구인들이 작은 이익을 버리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몸은 이국 땅에 떨어져 있지만 국내 배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은 여전했다.

알 아인=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