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 속보냐 완보냐/안보국방(총선공약을 따져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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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통일바람타고 각당 다퉈 거론/복무단축 시행도전에 “더 단축”/예비군 민자·민주는 수술론,민중·신정은 폐지론
이번 14대총선에서 모든 정당들은 안보·국방부문에서도 시민생활에 직결된 병역관련사항을 가장 비중있는 공약으로 내세우고 남북관계 진전추세에 따라 각당이 예외없이 군축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예비군제 개선 ▲국민편익우선의 국방행정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 등 민생관련 공약들이 과거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필수」공약사항이라면 「군축을 통한 남북간 군사적 대결해소」라는 새로운 공약은 최근에 한반도가 처해있는 시대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각 당이 제시하고 있는 군축관련 공약은 결국 의미의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신국방정책(국민) ▲국방비 삭감(민중) ▲군의 정예화(신정) ▲균형감축(민자) 등 다양한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각 정당들이 안보환경변화를 감안,군축을 주요 공약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어느 정당도 이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목표제시에 머무른 아쉬움을 준다.
공약이 「공약」일수도 있다는 의구심은 현역병 복무기간을 현행 30개월에서 18개월로 대폭 단축하겠다는 대목에서도 발견된다.
48년 건군이래 현역병 복무기간이 9차례 증감을 거듭해오는 동안 가장 큰 폭으로 단축되기는 80년 30개월에서 93년 이후 26개월로 4개월 단축된 것이 처음이다.
따라서 93년 이후 입대자부터 적용될 26개월 복무기간을 다시 18개월로 무려 8개월이나 단축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비록 동일한 내용의 공약사항이라도 각 정당에 따라 그 강도·구체성에 있어 뚜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병역관련 공약의 경우 ▲예비군 및 민방위제철폐(민중·신정) ▲지원병제 도입(국민) ▲현역병 18개월·예비군 30세로 인하(민주) ▲예비군제 개선(민자) 등으로 민중·신정당이 상대적으로 급진성을 보인데 반해 민자당이 가장 보수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표현상의 강도차가 곧 그 정당의 이념적 성향을 대변해 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안보·국방관련 공약에 관한한 각 정당은 대체로 온건·보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변국의 군사대국화에 대응하는 국방전략을 수립해야 하고(민주) ▲국방비를 대폭삭감,복지예산으로 돌려야하며(민중당) ▲군의 방어개념을 「민족방어」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신정)는 등의 주장이 없지는 않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커다란 틀에서 일탈하지는 않고 있다.
이번 각 정당들의 공약이 그 실현성에 문제가 있고 유권자들의 즉흥적인 관심을 끌어내는데만 집착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안보·국방관련 공약을 역대 어느 선거때보다도 다양하게 제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안보·국방관련분야가 극소수 지배집단의 전유물로 독점돼온 것과는 달리 이제는 국민전체의 사활과 국가의 명운이 걸린 현존하는 중대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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