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그 경관 대단한 일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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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찰공무원 원유석 경위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정책의 폐지를 호소하며 쓴 글이 보도된 14일 오전. 그가 근무하는 서울의 한 경찰서는 "중앙일보 때문에 난리가 났다"며 어수선했다. 경찰 간부들은 "일선 경찰관이 상의도 없이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정책을 비판했다"며 보도 경위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글의 내용보다는 글이 신문 지면에 나가게 된 과정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듯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e-메일을 통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내왔다. 그는 "자기 자식이 실수해 모의고사 망친 것을 제도 탓으로 돌리는 한 아버지의 무지한 이기주의"라고 혹평했다.

원 경위를 격려하는 독자는 더 많았다. 전주에 사는 고교 교사 출신의 한 독자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경찰 분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네티즌 김교철씨는 "공무원 신분으로 참 용감하다. 삭탈관직당하면 어쩌려고.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며 지지를 표했다. 또 다른 네티즌 정선철씨는 "경쟁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고 경쟁 없는 교육은 멍청이를 만들 뿐"이라며 공감했다.

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원 경위가 글을 쓰게 된 순수한 동기다. 나라와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는 '대통령께 드리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하는 나라는 흥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망합니다. 우리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 아니었을까요"라고.

원 경위는 자신의 자식만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나라 전체의 미래와 경쟁력이었다. 이러한 진심을 담아 글을 썼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탈권위주의'를 강조해 왔다. 지위가 높지않은 공무원인 원 경위가 감히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하소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 정부가 만든 개방적.수평적 토론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원 경위의 글에 대해 진상조사에 나서기보다 하나의 소중한 의견으로 수용하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또 다른 용기를 기대해 본다.

한애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