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현대 대결 「6라운드」/무슨 쟁점 놓고 싸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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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자금→증자불허→「금융제재」해제 요청/청와대 공사대금→가지급금→경제단체 성명
정부와 현대그룹간의 잇따른 씨름판이 관심을 끌고있다. 1월초 정주영 전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신당창당 선언을 한 이후 정부와 현대가 각종 쟁점을 놓고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며 고단수의 전략을 서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방전은 집권당과 통일국민당의 총선득표 전략과 얽혀있고 우리 경제를 일궈가는 분위기를 크게 흔들어 놓고 있어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않다. 크게 보아 6라운드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씨름판의 판세를 살펴본다.
◇1막=정주영 국민당 대표는 1월8일의 기자회견에서 『추석과 연말때 6공의 청와대에 모두 3백억원 가까운 정치자금을 줬다』고 첫 대정부 포문을 열었다. 정씨는 『6공이 재집권 하면 경제소생 불능』이라는 토도 달았다.
청와대측은 『관행에 따라 기탁해온 일은 있으나 본인의 뜻에 따라 불우이웃돕기 등에 썼으며 대통령이 이를 시정하려 노력해왔다』고 해명했으나 큰 파문이 일었다. 현대그룹은 이 무렵부터 계열사의 회사채 발행 및 대출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있다는 불만을 하기 시작했고 금융기관 주변에는 현대에 대한 금융규제설이 퍼졌다. 1월말에는 현대계열사에 3백억원을 대출해준 한 은행 임원이 모기관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2막=현대그룹은 1월23일 정세영 회장 명의로 증권감독원에 『극동정유 증자대금 마련 등을 위해 대주주 주식매각에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공식 진정서를 냈다. 감독원은 이에 대해 2월10일 『증시가 호전될 때까지는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냈고 주식매각을 이유로해 2월13일에는 현대정공 등 2개 계열사의 유상증자를 다시 불허했다.
2월7일에는 국세청이 현대계열사의 주식이동 조사에 다시 착수,『주식 위장분산 혐의에 대한 통상적인 조사』라는 국세청과 『수표번호 등 상례를 벗어난 자료까지 요구하고 있어 자금흐름조사 탄압』이라는 현대의 신경전이 계속됐다.
◇3막=국민당 정대표는 2월25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계속 현대그룹에 압력을 가하면 현대의 부도로 한국 경제 3분의 1이 부도날 것』이라는 배수진의 공격을 폈다. 이어 29일에는 현대그룹 사장단이 금융압박으로 부도위기에 처해있다며 「금융제재」의 해제를 요청하는 탄원서까지 정부에 냈다.
현대측은 『정부가 사채업자에게까지 위해를 가하는 등 법질서를 어기고 있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현대만을 대상으로 한 금융규제는 없으며 오히려 현대가 국민당 지지전략의 일환으로 자해부도라는 극약처방까지 동원,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도높은 비난을 계속했다. 이 영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3월초에는 현대에 대해 4백50억원의 회사채 발행이 허용되는 등 「제재」가 완화되는 듯한 움직임도 있었다.
◇4막=정대표가 3월5일 정선 지구당 대회에서 『노대통령이 4백43억원이나 들여 청와대를 호화롭게 짓고서 공사대금중 2백25억원을 현대건설에 주지않고 있다』고 포문을 연뒤 다음날 현대가 정부를 상대로 청구소송을 냈다. 정부는 계약서대로 전부 지급했다며 현대가 터무니 없는 주장을 펴고있다고 반박했다.
◇5막=정부는 현대가 정주영씨 일가에게 가불로 2천4백억원의 가지급금을 준 사실을 3월초부터 공세의 계기로 잡아 「즉각 회수」를 거듭 촉구,상황을 반전시켰다. 현대는 주식매각 허용 조건부로 95년까지 회수를 고집하다가 지난 16일 『주식과 현금으로 즉각 돌려받겠다』며 역공을 시도했다. 정부는 그러나 관계규정에 어긋난 주식대물 변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6막=경제 5단체가 우여곡절 끝에 17일 현대의 정치참여 자제를 촉구하는 광고를 내자 현대와 국민당은 즉각 『정부의 공작이며 현대는 정경분리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정부와 현대간의 이같은 미묘한 갈등이 재계의 활동영역을 위축하고 나아가서 국민경제 전체의 분위기를 크게 흐려놓고 있다는데 비판이 몰리고 있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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