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국민당 혼동 없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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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그룹이란 거대기업군을 배경으로 한 국민당의 출현이 초래한 14대 총선의 이색적 구도는 우리나라 총선사상 일찍이 없었던 갖가지 새로운 양상을 연출하면서 정계·정부·재계는 물론 온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당초 현대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기성정치인들 만으로는 우리나라의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내용의 정치참여 동기를 밝히고 깨끗한 정치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국민당의 탄생에 대한 국민적 관심속에는 의구심이나 우려의 그늘이 지금처럼 짙게 배어있지는 않았었다. 일부에서는 식상한 기성정계의 행태를 자극함으로써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직이 무엇이든 일정한 결격사유만 없으면 누구든지 정당활동을 할 수 있고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참여의 문호는 개방돼 있는 것이 우리의 정치제도다. 그러나 기업·군대·정부기관을 가릴 것 없이 특정정치인의 출신조직이 부당하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정치인의 선거운동을 도울 경우 이는 당연히 여론의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불법적 지원에 대해서는 법의 제재를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작금 국민당에 쏠리는 우려와 비판 역시 정당이 선거운동에 끌어다 쓰는 기업의 경영자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일자 신문에 광고로 실린 경제5단체의 입장표명은 그같은 우려를 최초로 공식화 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경제단체들의 공동성명은 『현대그룹 계열사의 많은 인력과 장비,시설 등이 특정정당의 총선활동에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 사태를 지적하고 기업자금과 산업인력이 기업경영 이외의 목적에 사용된 결과 기업이 부실화 되면 그 피해는 국민 모두가 보게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굳이 이 성명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전국에 산재한 방대한 현대그룹 조직의 상당수 임직원들이 국민당을 지원하는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국민당과 현대그룹에 몸담은 구성원들이 정확하게 알고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큰 지장을 주고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현대의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걱정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회장 자신이 정치참여 동기로 설명한 나라경제에 대한 걱정을 국민당이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면 경제를 망친다고 지탄해온 기성정계와 신설 국민당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현대그룹의 사업부문들이 국민 경제발전에 매우 중요한 전략적 업종에 걸쳐있다는 사실과,또 한편으로는 현재의 경제상황이 기업인력과 자금의 털끝만한 낭비조차 허용할 수 없는 각박한 국면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현대그룹과 국민당은 한번 더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같은 사실로 인해 현대측 자원의 국민당 누출은 그만큼 더 민감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민당은 기업과 정당의 구분을 확연히 함으로써 이 문제로 인한 국민적 우려를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는 것이 선거전략 차원에서도 이롭다는 것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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