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안남기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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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부자가 자기 재산을 몽땅 털어 황금등잔을 만들어 땅속에 파묻어두고 혼자 즐겼다. 그러나 어느날 등잔을 도둑맞고 비통해 했다.
보다 못한 옆집 사람이 찾아와 위로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그대신 돌로 만든 등잔을 땅에 파묻고 그것이 금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소. 어차피 당신은 그 등잔을 쓰지 않을테니 금등잔이면 어떻고 돌등잔이면 어떻소.』
재산은 소유보다 사용하는데 더 가치가 있다는 비유다. 그러나 재산은 사용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잘못 사용된 재산은 차라리 사용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경우를 요즘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목격한다.
그렇다면 재산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해 일찍이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명쾌히 대답한 일이 있다. 그에 따르면 한 사람의 재산,특히 잉여재산이란 그것의 소유자가 그의 생전에 사회의 복지를 위해 관리하기로 되어있는 「신성한 위탁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재산이라 해서 마음 내키는대로 마구 써버려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재산에는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따른다. 더구나 그 재산이 한사람이 살아생전 쓰기에는 너무 많을때 그 의무는 더욱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알프레드 노벨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라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리고 그 재산은 「노벨상」이란 이름으로 그가 죽은지 1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조금도 녹슬지 않은채 오히려 더 영광스런 이름으로 살아 있다.
최근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유산 안남기기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기업인·교수·판사·변호사·의사 등 2백여명이 참여하는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따지고보면 이땅의 온갖 부패·부정·부조리가 돈때문에 일어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덤속에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돈이 말을 많이 하면 진리가 침묵한다』는 속담은 요즘 우리 세태를 두고한 말은 아닌지…. 그런 뜻에서 「유산 안남기기운동」은 더욱 값져보인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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