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남발은 폭력이다/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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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히틀러는 선전을 무서운 병기로 활용한 명수였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전에 따라 사람들이 천국을 지옥으로,또는 지옥을 천국으로 여기게끔 할 수 있다.』
선전에 관한 히틀러의 첫번째 지도원리는 대중의 머리에 강한 이미지를 심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강렬한 언어와 시각적인 요소를 동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연출이 필요하다. 제복·악대·당기·배지 등은 연출을 위한 소도구며 무대장치·조명·배경음악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다.
○메가톤급 폭로전
히틀러의 선전술은 대중의 주의를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집중시켜 그것이 매우 중요한듯이 보이게 하는데 있다. 그러던 그도 패전을 맞았다. 히틀러는 선전에서 이겼지만 결국 선전에서 졌다. 그는 대중이 이성적·합리적 판단보다는 감정과 정서에 의해서만 지배받고 있다고 보는 큰 오류를 범했다.
총선을 앞두고 일부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당개편대회나 창당대회에서조차 폭죽이 터지고 요란한 음악들이 동원되었다. 정치 민주화와 함께 선거운동 연출극도 더욱 「현대화」했다. 역시 선전이야말로 유권자를 사로잡는 병기일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후보자들과 그의 지지자들은 어떤 시청각자료를 내붙여야 될지,또 무슨 강렬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당길 수 있을지 기발한 아이디어 싸움을 하고 있다.
신당일수록,그리고 정치 신인일수록 더욱 독한 이야기들을 하고 다닌다.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에서부터 야당대표에 대한 험담에 이르기까지 위태위태한 수준을 오르내리는 인신공격도 터져나오고 있다. 어느 당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막판에 메가톤급 폭로전술을 동원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주요외국투자가들도 「대피」상태에 있다. 총선정국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들의 피부에 와닿는 제1의 관심사는 경제생활에 관한 각당의 선거공약이다.
여·야당이 똑같이 내놓는 금융실명제와 특히 아파트를 반값으로 낮춰 대량으로 공급하겠다는 국민당공약이 관심을 끌고 있다. 그게 가능한 이야기냐 하는 문제보다는 도대체 실현시킬 의사가 있느냐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별 뜻도 없으면서 그저 모양새나 갖추려 하는 구석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식
민자당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선거공약으로까지 내놓았다가 이의 실시를 유보시킨 전력이 있으며 민주당은 이 제도에 대해 공식 찬성,비공식 반대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의원들이 많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명제의 「즉각적인 실시」를 내걸고 있는 국민당에도 조직의 생태적 특성으로 보아 신뢰를 두기 어렵다는 반응들이다.
국민당의 「아파트 반값 공급」공약은 시중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번 기대해 볼까』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 놀리는 거냐』고 화를 내는 이도 있다. 경실련의 정책공약평가 세미나에서는 대량의 택지개발과 주택공급제도개선,세제개혁등 구체적 대안제시도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됐다.
이밖에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엄청난 재정투자를 약속하면서도 세부담은 낮춰주겠다는 상식이하의 모순된 공약 등도 있다. 모든 당이 근로소득세 경감조치도 내세웠다.
권력을 노리는 사람들이 세금을 깎아준다는 바람에 많은 나라의 유권자들이 속아 넘어간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내린 것 이상으로 세금이 되오른 것을 우리들은 보아왔다.
미국에서도 그랬고,유럽에서도 그랬다. 세금을 깎는다는 것은 사실상 비상조치나 다름없다. 근로소득세 부담을 덜어준다고 해서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개세의 원칙이 무너진다. 실제로 근로자의 60%정도가 과세미달자다.
세율을 내려 보았자,이들 저소득층에는 어떤 희소식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지원하는 다른 복지대책을 공약으로 내거는 것이 옳다.
사태를 악화시키느니,차라리 현상유지가 더 낫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그저 표를 얻기 위해 당치도 않은 공약을 내거는 것은 사실상 국민에 대한 폭력이나 다름없다. 「믿거나 말거나」하는 식의 공약이나,어떻게든 유권자의 눈·귀를 붙들어 매기 위한 전략적 공약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 대가는 국민생활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공산주의자와의 싸움에서도 이겼고 걸프전에서도 승리를 거뒀던 부시 미대통령은 두개의 전쟁에서 얻은 그의 영광을 국내 경제전쟁에서 잃어버렸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자신의 인기 하락을 눈여겨 보고 있는 부시의 심정을 한국의 정치가들은 어떻게 헤아리고 있는가.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정치불신만 커져
국내 경기는 벌써 이상기류를 타고 있다. 4개월째나 생산·출하가 하강세를 타고 있으며 무역수지 적자는 올들어 두달사이에 30억달러를 넘어섰다. 제조업의 이익률은 뚝떨어졌으며 기술개발촉진등 구조개선문제는 아직도 출발점에서 멈칫하고 있다.
경제를 흔들어 놓는 선거활동은 반드시 경계되어야 한다. 저질 정치가들이 빚어내는 격렬한 언어의 횡포,경제를 담보로한 고도의 선거술책 등이 앞으로 있을 본격 유세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성적·합리적 판단으로 각 후보들의 공약을 짚어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다.<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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